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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舍 幽默 에세이정선 - 어떤 인상들 본문
<어떤 인상들(一些印象(节选))>
제남의 가을경치는 시적이다. 가령 당신의 환상 중에 있는 중고시대28)의 오래된 성과 같다. 잠이 든 성루, 협소한 돌길, 넓고 두터운 성벽 그리고 성을 중심으로 흐르는 맑은 시내는 산을 비추고 있다. 시냇가에는 붉은 도포와 푸른색 바지를 입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당신의 환상 중에 만약 이러한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제남이다. 만약 상상을 할 수 없다면 (많은 사람이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제남에 와서 보기 바란다.
가을이 되면 제남에 와 보라. 제남의 성(城), 강(河), 옛 길, 산의 멋진 경치는 언제 나 당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 제남의 추색(秋色)이 더해지면 소박하고 예 스러운 그림 같은 경관에서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적인 경관으로 변한다. 이 시적인 가을 정취는 오직 제남에만 있는 것이다. 상제는 여름의 예술을 스위스에 하사하셨 고, 봄의 예술은 서호(西湖)29)에, 가을과 겨울의 예술은 모두 제남에 주셨다. 제남의 가을과 겨울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가을이 깊이 잠들면 겨울로 변해 가는데 상 제는 제남을 갑자기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어 가을과 겨울을 함께 제남에 주셨다.
시의 경지(境界)에는 반드시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 제남에 와보라. 색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높낮이 다른 산들은 가을정취 중에 더욱 달라 보인다. 색으로 설명 하자면 산중턱의 소나무들의 색은 푸르고 검다. 소나무들이 가을 햇볕을 받으면 그 그림자는 회색보다 깊은 색이 나면서 검은 색보다는 옅은 색이 된다. 이 그림자가 옆에 있는 황초(黄草)를 덮어 회색 중 노랑색을 띄는 그늘 그림자를 드리운다. 산자 락에는 각종 색깔의 나무들과 가지들이 있는데 한층 한층 어떤 것은 황색이고, 어 떤 것은 회색이며 어떤 것은 녹색이다. 어떤 것은 마치 옅은 자주색과 같다. 산 정 상의 색은 태양의 이동에 따라 색이 다르다. 산 정상의 색깔이 같지 않은 것은 중 요하지 않고, 산중턱의 색깔이 다른 것은 진정 사람들로 하여금 시를 짓게 만든다. 산 중턱의 색깔은 영원토록 그곳에서 바뀌는데 특별히 가을에 태양빛은 홀연 시원 하기도 하고 갑자기 잠깐 따뜻해지기도 한다. 이 변화는 격렬하지는 않지만, 산의 색은 햇빛 세기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황색이 갑자기 조금 선명해지고, 또 갑자기 조금 어두워지며 또 갑자기 보이지 않는 한 층의 옅은 안개가 그곳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가, 홀연히 갑자기 산들바람이 자연을 대신해서 이 색깔들을 조화롭게 한다. 가볍게 여러 가지 각종 색깔을 한 층 덧입히는데 이 색깔들은 옅으면서도 아름다운 색이 된다. 이와 같은 산에 남색 하늘과 맑고 따뜻한 태양빛을 더한다. 하늘의 남빛
28) 중고시대는 중국 역사의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에서 당(唐)대까지이다.
29) 절강(浙江)성 항주(杭州)에 있는 호수 이름. 서호(西湖)는 중국 고대 4대 미인 중 한명이었던 서시(西施)의
이름을 따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리며, 북송 시인 소동파(苏东坡)가 칠언절구로 서호(西湖)와 서시(西施) 에 대한 유명한 시를 남겼다.(출처: 중국행정구획총람, 편집부, 2010. 8. 1., 도서출판 황매희)
은 남색이 곧 녹색으로 변할 것 같은 색이지만 완전한 녹색은 아니다. 맑고 따뜻한 태양빛은 곧 더워질 것 같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것은 마치 시와 같은 부드러움이다. 이것이 바로 제남의 가을이다. 게다가 색의 다름 때문에 그 산의 높 음과 낮음이 더욱 분명해진다. 높은 것들은 더 높아지고, 낮은 것은 더욱 낮아진다. 산의 날카로운 곡선은 맑은 하늘아래 더욱 명백하고 분명해지며 견고해진다. 산 정 상의 저 꼭대기를 보라!
다시 물을 보라. 양과 질 그리고 형식으로 말하자면 어디의 물을 제남의 물과 비 교할 수 있겠는가? 샘이 있다. 곳곳이 샘이다. 강(河)과 호수(湖)가 있다. 이것은 형 식상의 구분일 뿐이다. 샘이든 강이든 호수이든 모두 매우 맑으며 모두 매우 달다. 제남은 자연의 연인이지 않은가? 대명호(大明湖)의 여름 연꽃과 성하(城河)의 녹색 버드나무와 같은 자연은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물을 보라. 특히 가을의 물을 보자. 제남에는 가을 산이 있고 또 가을 물(水)도 있다. 이 가을이야말로 진정한 가을이라 고 할 수 있다. 이는 가을 신(秋神)이 제남에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다른 것은 말할 필요가 없고 물속의 녹조만 말하겠다. 상제(上帝) 마음 속의 녹색을 제외 하면 제남 녹조의 녹색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밝은 녹색 은 모두 물의 맑고 깨끗함을 빌려 자신을 드러내는데 이는 마치 미인(美人)이 거울 을 빌려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이 녹조는 스스로 물의 아 름다움을 누리고 있는 중인데 이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녹조식물들은 녹(绿)의 걱정거리를 알고 있다. 그들은 성장하여 말년이 되면 수면 에 입맞춤 할 것이며, 녹색의 달콤한 꿈을 꿀 것이다. 장난기 있는 오리는 황색 발 을 사용하여 녹(绿)을 한 번, 두 번 밟을 것이다. 옷을 빠는 여인들의 그림자들이 녹 색 잎에 또 한, 두 번 입 맞출 것이다. 단지 이것만이 그들의 달콤한 걱정거리이다. 이 아름다움을 보았던 죽은 시인이 부러울 따름이다!
가을에 제남에는 물과 푸른 하늘 같은 시원함이 있다. 하늘에는 작고 하얀 구름 이 있고, 물위에는 작은 파도 굴곡이 있다. 하늘과 물 중간은 청명(清明)하다. 따뜻 한 공기는 계수나무30) 꽃향기를 머금고 있다. 산 경치는 더욱 더 분명하다. 가을 하 늘과 가을 바다는 비현실적으로 입맞춤하고 있다. 산들은 움직이지 않고, 바다는 미 세하게 요동친다. 중고시대의 오래된 성은 가을 색과 가을철의 소리를 띄고 있다. 이곳이 바로 제남이고, 곧 시(诗)이다.
제남의 겨울이 어떠한지 알고 싶으면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라 지난번에는 제남의 가을에 대해 이야기 했었지. 이번에는 겨울을 이야기해야 겠구나.
나와 같이 북평(北平)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겨울에 바람이 많이 불지 않으
30) 중국 및 일본 원산의 낙엽 큰키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정원수로 심어 기른다.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고 개 화기에는 향기가 좋다
면 그것은 곧 기적이다. 제남의 겨울에는 바람 부는 소리가 없다. 나와 같이 런던에 서 돌아온 지 얼마 안된 사람에게 겨울에 일광(日光)을 볼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제남의 겨울은 구름 한 점이 없다. 열대지방의 일광(日光)은 영 원토록 그렇게 독하고, 맑은 날씨는 오히려 사람들을 무섭게 한다. 하지만 중국 북 방지역의 겨울에 따뜻하고 맑은 날씨가 있는 제남은 정말 보배와 같이 살기 좋은 곳이다.
만약 오직 햇빛만 있다면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라. 하나의 오 래된 성에 산과 물이 있는데 사람들은 모두 파란 하늘아래 따뜻하고 편안하게 자고 있다. 이 도시는 오직 봄바람만이 그들을 깨워준다. 이 곳이 이상적인 세계가 아닐 까?
작은 산들은 제남을 둘러서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완벽한 원에서 오직 북쪽 만 비어있다. 이 둥글게 있는 산들은 특히 겨울에 매우 사랑스럽다. 마치 제남을 하 나의 작은 요람 안에 넣어둔 것만 같다. 그들은 모두 조용하게 흔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여러분 안심하세요. 이곳은 틀림없이 따뜻한 곳이에요.” 정말 제 남 사람들은 겨울에 모두 미소를 짓고 있다. 그들은 이 작은 산들을 보면서 마음속 으로 의지할 곳이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하늘부터 시작하여 아래의 산들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생각한다. ”내일은 아마 봄이 오겠지요? 이렇게 따뜻한데 오늘 밤 중 에 산과 풀이 아마 녹색으로 물들겠지요?“ 이 환상은 한순간에 실현될 수 없기에 그들은 결코 급해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선을 베푸는 겨울이 있는데 무엇 때문 에 다른 계절이 오기를 희망하겠는가?
가장 절묘한 것은 작은 눈이 내릴 때이다. 보기 바란다. 산의 작은 소나무들은 갈 수록 청흑(青黑)색을 발하고, 소나무의 뾰족한 부분은 모두 하얀 꽃들을 떠받치고 있는데 왜국(小日本) 간호사들과 같다.31) 산봉우리들은 모두 하얗게 변하고, 푸른 하 늘에 은태를 두른다. 산비탈 위에 어떤 부분은 눈이 많이 쌓였고, 어떤 부분은 흰 눈 아래에 여전히 초색(草色)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한길은 희고, 한 길은 푸르게 되어 산에 물결무늬의 화의(花衣)를 입혀 놓았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이 화의(花衣) 가 바람에 흔들려 움직이는 것 같은데, 이것은 당신이 더욱 아름다운 산의 속 살결 을 보기를 소망하게 만든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누르스름한 태양 빛이 산 중턱을 비춘다. 그 때쯤에 얕은 눈은 부끄러움을 타듯이 조금씩 분홍색을 드러 낸다. 이것이 바로 작은 눈이 내릴 때인데 제남은 큰 눈은 견디지 못한다. 제남의 작은 산들은 매우 수려하다.
오래된 제남, 성안(城内)은 그렇게 협소하고 성 밖(城外)은 또 그렇게 넓으며, 산비 탈위에는 작은 시골마을들이 엎드려져 있다. 마을 집들의 지붕에는 눈이 쌓여 있다. 맞다. 이것은 한 폭의 수묵화(水墨画) 또는 당대(唐代) 유명한 사람의 그림일 것이다.
제남의 물을 한번 보자. 물은 얼음이 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녹조(绿藻)위에서 뜨 거운 김이 난다. 수초(水藻)32)는 정말 푸르러서 겨울에 비축해 두었던 녹색을 모두
31) 역자 주: 나무의 뾰족한 부분이 눈에 덮힌 모습을 일본 간호사들이 흰색 간호 모자를 쓴 모습으로 비유함.
가지고 온 것 같다. 하늘이 맑을수록 수초는 더욱 푸르다. 이러한 푸르른 활력 때문 에 물이 어는 것을 지켜 볼 수가 없다. 게다가 길게 늘어진 수양버들은 물속에서 그림자를 비춘다. 보라. 맑은 하수(河水)부터 천천히 위쪽까지 보라. 공중과 하늘, 위 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 그렇게 맑고 투명하다. 그렇게 맑고 푸르다. 이 모든 것이 맑고 신비스러운 푸른색 수정이다. 이 수정안에는 붉은 지붕과 황초산(黄草山)33) 그 리고 카펫 위의 작은 꽃무늬와 같은 회색 나무 경치를 품고 있다. 이러한 것이 바 로 겨울의 제남이다.
나무는 비록 잎이 없어도 새들은 게으르지 않다. 햇빛 아래 날개를 펴고 짖는 종 달새를 보라. 산동사람들은 종달새의 숭배자들이다. 제남은 종달새의 나라이다. 집집 과 곳곳마다 종달새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당연히 작은 꾀꼬리도 적지 않다. 종달새의 나라 안에서 열심히 노래한다. 그리고 산 까치는 무리를 지어 나무위에서 노래하고 연한남색의 꼬리를 당기며 난다. 나무위에는 잎이 없지만 깃털로 장식되 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서양의 미인과 같기도 하다. 강가에 앉아서 그들이 공중에 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계곡물이 촬촬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한 숨 자 고 싶어진다. 이것은 잠이 오게 하는 힘이 있다. 믿지 못하겠거든 한번 시도해 보라. 잠을 자봐라, 절대 얼어 죽지는 않는다.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고?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제노대학에 도착했을 땐 아직 여름방학이 아직 끝나지 않은 때이다. 태양이 떨어 질 때를 제외하고는 학교 내에서는 하나의 그림자도 볼 수가 없다. 몇 개의 백색 장의자 위에는 단풍나무가 그 의자를 위해 우산이 되어주고, 또한 나의 임시 서재 가 되어준다. 손에는 하나의 책이 들려 있지만 반드시 읽는 것은 아니다. 땅위의 나 뭇잎들의 그림자를 읽는데, 책을 읽는 것보다 재미가 있다. 내가 보기에 잔무늬가 있는 녹색 그림자34)는 작은 황색 동그라미들을 끼고 있는데 그 황색 동그라미들이 모두 동그랗지는 않다. 나뭇잎이 드문 지역이라 어떤 때는 일곱 모서리와 팔각형의 작은 조각의 나뭇잎만 눈에 띈다. 작고 검은 당나귀 같은 개미들은 오로지 이 빛의 원위에서 황망하게 오간다. 저쪽 편의 흰색 의자위에는 잔무늬의 녹색 그림자가 새 겨져 있고, 또 작은 남색 나비들이 내려와 날개를 오므리고 있는데 잠을 자려고 하 는 것 같다. 조금의 바람은 녹색 그림자를 불어서 흩어지게 한다. 작은 남색 나비는 깨어나서 마지못해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데, 마치 꿈에서 날개 짓을 하는 것 같다. 날아서 가지만 멀리가지 않고 다른 곳에 내려 노란 국화의 꽃술을 안는다. 보고 있 으면 금방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작은 나비는 다시 날아간다. 그리곤 멍청한 말벌이 날아온다.
정말 조용하다. 남쪽을 향해 보라. 천불산(千佛山)은 마지못해 몇몇 흰 구름에 의 지하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북쪽을 향해 보라. 담 벽 밑에 가끔 당나귀 한, 두 마리가 지나가며 작은 방울소리를 낸다. 동서쪽을 향해 보라. 건물담장위에 담쟁이
32) 물풀
33) 산동성 제남시에 있는 산
34) 역자주: 잔무늬가 있는 녹색 그림자는 햇빛이 벌레 먹은 나뭇잎을 비추며 생기는 그림자를 말한다.
덩굴이 보인다. 나뭇잎은 두 면의 올라오는 검푸른 물결과 같이 미동한다. 아래를 향해 보라. 사면이 모두 푸른 풀이다. 위를 향해 보라. 붉은색의 지붕 끝이 보인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녹색, 붉은 색, 위와 아래 모두 한 장의 그림과 같다. 색은 고정되어 있으나 볼수록 아름답다. 사무실 큰 종의 침은 슬그머니 이동하는데 마치 시간을 깨우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움직인다. 나무의 빈틈을 통 해 가끔 여자아이를 볼 수 있다. 꽃 의복은 특히 화려하여 이 조용함을 돌연 자극 한다. 꽃은 더욱 붉어지고 시간은 더욱 푸르게 된다. 마치 그녀의 꽃 의복이 이 색 들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는 것 같다. 작은 소녀가 보이지 않자 다시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아카시아 나무위에는 페페로미아(豆瓣绿)의 작은 벌레가 가볍게 떨어져 공중에 걸려있다. 나머지는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
정원(园中)에는 물이 조금 부족하다. 작은 참새들도 이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 다. 자주 작은 눈을 사용하여 사면을 둘러 물을 찾는다. 만약에 정원에 작은 계곡이 있으면 얼마나 훌륭하겠는가. 계곡 내에는 각종 색깔의 물고기들이 있고, 또 연꽃이 있다면 말이다! 분수지(喷水池)35)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물소리는 단풍잎과 조 화롭게 소리난다. 돌 탁자 위에서 15분을 자면 어떠한 색깔과 어떠한 달콤한 향이 나는 꿈을 꾸게 될 것인가! 꽃나무는 이미 충분하나, 다만 물이 조금 부족할 뿐이다.
작은 소나무 울타리는 활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행히 소나무 향이 풍겨져 나온다. 만약 위에 유홍초를 두르고, 새빨간 꽃들을 피웠다면 아마 활기 없는 것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정원 밖의 몇 그루 아카시아 나무는 매우 아름다운데, 흰색 돌 의자 몇 개는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돌 의자가 없는 것도 또한 좋다. 정원의 전경은 기묘하게 꽃과 나무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고, 인공적인 장식은 적다. 벽돌의 화단, 녹색 대나무 울타리 모두 없다. 이러면 사람이 없을 때에 정말로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인공적으로 관리한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속되거나 조잡하지 않다.
아! 곧 여름이 온다! 작년의 풍경이 또 생각난다. 아마 어서 여름방학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겠지. 여름방학아 빨리 와라! 이 전체의 정원을 꿀벌과 나비 그리고 나에게 달란 말이다. 지나치게 이기적이다. 누가 아니라고 하는가! 하 지만 나는 나무그림자를 보며 훌륭하진 않지만 괜찮은 시를 여러분들에게 지어줄 수 있다.
학교 남쪽 편의 그 수박 밭은 사람의 입에 단물이 고이게 한다. 하지만 움직이기 귀찮다. 돌 의자 위에 앉아 기다리자. 태양이 떨어지기를 기다린 후 밭에 가서 수박 몇 개를 사자. 당연히 이것은 작년에 내가 했던 말이다. 올해 남쪽 편의 밭에 수박 을 심었던가? 수박을 심었던가 아니면 콩을 심었을 것이다. 어쨌든 흰색 돌 의자는 여전히 거기에 있고, 담쟁이덩굴도 녹색으로 물들어 간다. 오직 장미가 열리길 기다 린다! 장미가 열릴 때쯤이면 종자(棕子)36)를 먹는다. 비가오고, 날이 맑게 개고, 단풍
35) 분수탑에서 떨어지는 물이 괴도록 만든 못
36) 棕子(zōngzǐ): 매년 단오절인 음력 5월 5일에 먹는 중국전통음식
나무 아래, 흰색 돌 의자, 작은 남색 나비, 녹색 괴나무 벌레, 하! 꿈이었다! 다시 천 천히 꿈을 생각해 보자.
시로 증명한다. 맞다! 인상(印象)은 시로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인상은 필히 얼마간 촌스럽게 된다. “춘야(春夜)”에 대해서 쓰고 싶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제목인가! 이 제목을 생각해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시를 짓게 된다. 하지만 나는 시 인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은 마치 “쩔쩔매는 모습”인 것 같다. 시적인 맛 이 조금도 없는 단어를 사용했다. 신시(新诗)는 매우 어렵다. 머리 속에는 “아(呀), 오(噢),애(唉),루(喽)”와 준수한 “세미콜론(;)” 그리고 눈물 방울이 주룩주룩 흘러 내리는 것 같은 “따옴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없다. 어떻게 능히 이러한 보배 같은 것들을 사용해서 문장을 장식할 수 있는가? 이것은 실행이 불가하다! 구시(旧诗)? 역시 활기가 없다. 또한 최소한 십 몇 년 동안 사용되 지가 않아서 이미 고대의 물건이 되어 버렸다. 체면 구김을 면할 수가 없다.
결국 칠언율시 한수가 완성이 되었다! 60점도 못 받는 칠언율시를 만들어서 마음 이 매우 기쁘다. 없는 것보다 낫고, 이유를 막론하고 이는 나의 기본 철학과 일치한 다. 좋다. 다시 일곱 수(七首)를 지어서 총 8수(八首)를 만들자. 비록 한수도 매끄럽 지 않더라도, “양”으로 치면 족히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중국 땅은 광대하고 생산물은 풍부하니, 한 사람이 족히 8수의 “춘야(春夜)”에 대한 시를 쓸 수 있다.
아이고! 무릎 병이 또 도졌다. 무릎이 붓고 뻣뻣해져서 활기가 없다. 하루 종일 멍청하게 있으면서 밥 생각도 없다. 어떻게 시를 짓는가? 큰 소리로 포기한다고 외 치는 것밖에는 할 것이 없다. 정말 무능하다! 세 수를 지었는데 그 다음을 지을 수 가 없다.
한편의 산문을 따로 만들려고 하면 원고를 제출해야 하는 때에 이르고, 게다가 정신이 좋지 않으면 시와 산문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분산을 해서 좌우간 작성한 그 세 수(三首)를 받든지 말든지 먼저 보내버린다. 나는 바로 이러한 주의이다. 아무 튼 어떻게 얘기하든 나는 시로 증명한다.
(一)
셀수 없을 만큼의 춘광(春光)이 그렇게 쉽게 가는가? 말이 없는 꽃과 새의 밤은 가을과 같다.
동풍은 꿈과 같으면서도 살짝 취하게 만들고,
작은 달은 내 마음을 알지만 고민만 비출 뿐이다. 버드나무를 보고 있으면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고, 불같은 복숭아 색이 부끄러운 듯이 곱다.
어느 집에서 옥피리를 삼경(三更)37)이 지나서 부는가? 산은 드문 별들에 기대고 사람은 건물에 기댄다.
37)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눈 셋째 부분. 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사이이다.
(二)
유유자적한 마음으로 시의 경지(诗境)에 들어가니,
바람이 버드나무에 부딪혀 흩어지는 소리도 차갑게 들린다.
산중턱에는 달빛이 적어 푸른 소나무도 까맣게 보이고,
울타리의 언저리에는 빛이 많아 옥처럼 아름다운 자두나무가 노랗게 보인다네. 마음이 평온해 지면 점점 봄이 바다 같이 느껴지고,
꽃 무르익은 곳에 있으면 그림자에서도 향기가 날 것 같다.
언제 밭 일천 경38)을 사서
그곳에 온통 오동나무와 해당화39)를 심을까!?
(三)
잠을 탐하지 말고 오히려 거만함을 덜어라,
봄밤의 달빛이 평범하지 않다.
벽도40) 몇 그루는 나비들을 모으고,
자색 제비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꽃 해당화에 대한 꿈을 꾼다네 꽃들이 시 보다도 많은데 밤이 짧아 안타깝다.
버드나무가 사람처럼 마른 것은 정이 많기 때문이라네
최근 몇 년 간 부평초와 같이 떠돌며 초라하게 살다가
동풍과 함께 따뜻함과 차가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 세 수를 봐야한다! 오십년 후에 틀림없이 많은 사람이 주해를 할 것이다. 좋은 시는 주해(注解)가 필요 없다. 나의 평가자는 분명히 나는 자본가(资本家)이거나 가 난하지만 자본주의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두 번째 시에 “언제 밭 일 천 경을 살 수 있을까?”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자. 내가 먼저 주를 달겠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산지(山地)를 사는 것이지 일천 경이 펼쳐진 좋은 밭을 사라는 것이 아니다. 밭 곳곳에 꽃과 나무를 심어 농민으로 하여금 배가 고파 죽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천불산(千佛山) 양쪽의 벌거숭이산에 모두 야생능금(海棠)을 심으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이것이 나의 진정한 꿈이다. 이것은 나의 말이 명확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율시 자체의 부자연스러움 때문이다. 한 구절이 일 곱 자가 아니면 안 되는데 내가 어떻게 갑자기 여덟 자나 아홉 자로 바꿀 수가 있 겠는가?
됐다. 이제부터 다시는 이 고생을 하지 않겠다. 《일사인상(一些印象)》 작품 역시
38) ‘1顷’은 ‘100亩’에 상당함. 亩는 중국식 토지 면적의 단위. (‘10市分’을 ‘1市亩’로 하고 ‘100市亩’를 ‘1顷’으로 함. ‘1市亩’는 약 666.7제곱미터임.)
39) 꽃사과나무의 하나
40) 벽도(복숭아나무의 변종)
계속하지 않을 것이다. 여름방학 중에 잘 쉬면서 다리 관리를 잘 하면 미래 극동(远 东)지역 운동회의 오백마일41) 경보대회에 참가해서 일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이야말로 영웅호걸이다. 일곱 자가 한 구가 되는 시를 몇 구절을 꾸며내는 것은 도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931년 3월부터 6월까지 《齐大月刊》 제1권 제5, 6, 7, 8期에 실음
<一些印象(节选)>
济南的秋天是诗境的。设若你的幻想中有个中古的老城,有睡着了的大城楼,有狭 窄的古石路,有宽厚的石城墙,环城流着一道清溪,倒映着山影,岸上蹲着红袍绿裤的 小妞 儿。你的幻想中要是这么个境界那便是个济南。设若你幻想不出——许多人是不会幻 想的——请到济南来看看吧。 请你在秋天来。那城,那河,那古路,那山影,是终年给你预备着的。可是,加上 济南的秋色,济南由古朴的画境转入静美的诗境中了。这个诗意秋光秋色是济南独有 的。上帝把夏天的艺术赐给瑞士,把春天的赐给西湖,秋和冬的全赐给了济南。秋和冬 是不好分开的,秋睡熟了一点便是冬,上帝不愿意把它忽然唤醒,所以作个整人情,连 秋带冬全给了济南。 诗的境界中必须有山有水。那末,请看济南吧。那颜色不同,方向不同,高矮不同 的山,在秋色中便越发的不同了。以颜色说吧,山腰中的松树是青黑的,加上秋陽的斜 射,那片青黑便多出些比灰色深,比黑色浅的颜色,把旁边的黄草盖成一层灰中透黄的 陰影。山脚是镶着各色条子的,一层层的,有的黄,有的灰,有的绿,有的似乎是藕荷 色儿。山顶上的色儿也随着太陽的转移而不同。山顶的颜色不同还不重要,山腰中的颜 色不同才真叫人想作几句诗。山腰中的颜色是永远在那儿变动,特别是在秋天,那陽光 能够忽然清凉一会儿,忽然又温 暖一会儿,这个变动并不激烈,可是山上的颜色觉得出 这个变化,而立刻随着变换。忽然黄色更真了一些,忽然又暗了一些,忽然象有层看不 见的薄雾在那儿流动,忽然象有股细风替“自然”调合着彩色,轻轻的抹上一层各色俱全 而全是淡美的色道儿。有这样的山,再配上那蓝的天,晴暖的陽光;蓝得象要由蓝变绿 了,可又没完全绿了;晴暖得要发燥了,可是有点凉风,正象诗一样的温柔;这便是济 南的秋。况且因为颜色的不同,那山的高低也更显然了。高的更高了些,低的更低了 些,山的棱角曲线在晴空中更真了,更分明了,更瘦硬了。看山顶上那个塔! 再看水。以量说,以质说,以形式说,哪儿的水能比济南?有泉——到处是泉—— 有河,有湖,这是由形式上分。不管是泉是河是湖,全是那么清,全是那么甜,哎呀, 济南是“自然”的Sweetheart吧?大明湖夏日的莲花,城河的绿柳,自然是美好的了。可 是看水,是要看秋水的。济南有秋山,又有秋水,这个秋才算个秋,因为秋神是在济南
41) 500mi/h은 804.672km/h
住家的。先不用说别的,只说水中的绿藻吧。那份儿绿色,除了上帝心中的绿色,恐怕 没有别的东西能比拟的。这种鲜绿全借着水的清澄显露出来,好象美人借着镜子鉴赏自 己的美。是的,这些绿藻是自己享受那水的甜美呢,不是为谁看的。它们知道它们那点 绿的心事,它们终年在那儿吻着水皮,做着绿色的香梦。淘气的鸭子,用黄金的脚掌碰 它们一两下。浣女的影儿,吻它们的绿叶一两下。只有这个,是它们的香甜的烦恼。羡 慕死诗人呀! 在秋天,水和蓝天一样的清凉。天上微微有些白云,水上微微有些波皱。天水之 间,全是清明,温暖的空气,带着一点桂花的香味。山影儿也更真了。秋山秋水虚幻的 吻着。山儿不动,水儿微响。那中古的老城,带着这片秋色秋声,是济南,是诗。
要知济南的冬日如何,且听下回分解。 上次说了济南的秋天,这回该说冬天。
对于一个在北平住惯的人,象我,冬天要是不刮大风,便是奇迹;济南的冬天是没 有风声的。对于一个刚由伦敦回来的,象我,冬天要能看得见日光,便是怪事;济南的 冬天是响晴的。自然,在热带的地方,日光是永远那么毒,响亮的天气反有点叫人害 怕。可是,在北中国的冬天,而能有温晴的天气,济南真得算个宝地。 设若单单是有陽光,那也算不了出奇。请闭上眼想:一个老城,有山有水,全在蓝 天下很暖和安适的睡着;只等春风来把他们唤醒,这是不是个理想的境界? 小山整把济南围了个圈儿,只有北边缺着点口儿,这一圈小山在冬天特别可爱,好 象是把济南放在一个小摇篮里,它们全安静不动的低声的说:你们放心吧,这儿准保暖 和。真的,济南的人们在冬天是面上含笑的。他们一看那些小山,心中便觉得有了着 落,有了依靠。他们由天上看到山上,便不觉的想起:明天也许就是春天了吧?这样的 温暖,今天夜里山草也许就绿起来吧?就是这点幻想不能一时实现,他们也并不着急, 因为有这样慈善的冬天,干啥还希望别的呢。 最妙的是下点小雪呀。看吧,山上的矮松越发的青黑,树尖上顶着一髻儿白花,象 些小日本看护妇。山尖全白了,给蓝天镶上一道银边。山坡上有的地方雪厚点,有的地 方草色还露着,这样,一道儿白,一道儿暗黄,给山们穿上一件带水纹的花衣;看着看 着,这件花衣好象被风儿吹动,叫你希望看见一点更美的山的肌肤。等到快日落的时 候,微黄的陽光斜射在山腰上,那点薄雪好象忽然害了羞,微微露出点粉色。就是下小 雪吧,济南是受不住大雪的,那些小山太秀气。 古老的济南,城内那么狭窄,城外又那么宽敞,山坡上卧着些小村庄,小村庄的房 顶上卧着点雪,对,这是张小水墨画,或者是唐代的名手画的吧。 那水呢,不但不结冰,反倒在绿藻上冒着点热气。水藻真绿,把终年贮蓄的绿色全 拿出来了。天儿越晴,水藻越绿,就凭这些绿的精神,水也不忍得冻上;况且那长校的 垂柳还要在水里照个影儿呢。看吧,由澄清的河水慢慢往上看吧,空中,半空中,天 上,自上而下全是那么清亮,那么蓝汪汪的,整个的是块空灵的蓝水晶。这块水晶里,包着红屋顶,黄草山,象地毯上的小团花的小灰色树影;这就是冬天的济南。 树虽然没有叶儿,鸟儿可并不偷懒,看在日光下张着翅叫的百灵们。山东人是百灵 鸟的崇拜者,济南是百灵的国。家家处处听得到它们的歌唱;自然,小黄鸟儿也不少, 而且在百灵国内也很努力的唱。还有山喜鹊呢,成群的在树上啼,扯着浅蓝的尾巴飞。 树上虽没有叶,有这些羽翎装饰着,也倒有点象西洋美女 。坐在河岸上,看着它们在空 中飞,听着溪水活活的流,要睡了,这是有催眠力的;不信你就试试;睡吧,决冻不着 你。
要知后事如何,我自己也不知道。
到了齐大,暑假还未曾完。除了太陽要落的时候,校园里不见一个人影。那几条白 石凳,上面有枫树给张着伞,便成了我的临时书房。手里拿着本书,并不见得念;念地 上的树影,比读书还有趣。我看着:细碎的绿影,夹着些小黄圈,不定都是圆的,叶儿 稀的地方,光也有时候透出七棱八角的一小块。小黑驴似的蚂蚁,单喜欢在这些光圈上 慌手忙脚的来往过。那边的白石凳上,也印着细碎的绿影,还落着个小蓝蝴蝶,抿着翅 儿,好象要睡。一点风儿,把绿影儿吹醉,散乱起来;小蓝蝶醒了懒懒的飞,似乎是作 着梦飞呢;飞了不远,落下了,抱住黄蜀菊的蕊儿。看着,老大半天,小蝶儿又飞了, 来了个楞头磕脑的马蜂。 真静。往南看,千佛山懒懒的倚着一些白云,一声不出。往北看,围子墙根有时过 一两个小驴,微微有点铃声。往东西看,只看见楼墙上的爬山虎。叶儿微动,象竖起的 两面绿浪。往下看,四下都是绿草。往上看,看见几个红的楼尖。全不动。绿的,红 的,上上下下的,象一张画,颜色固定,可是越看越好看。只有办公处的大钟的针儿, 偷偷的移动,好似唯恐怕叫光陰知道似的,那么偷偷的动,从树隙里偶尔看见一个小女 孩,花衣裳特别花哨,突然把这一片静的景物全刺激了一下;花儿也更红,时儿也更绿 了似的;好象她的花衣裳要带这一群颜色跳舞起来。小女孩看不见了,又安静起来。槐 树上轻轻落下个豆瓣绿的小虫,在空中悬着,其余的全不动了。 园中就是缺少一点水呀!连小麻雀也似乎很关心这个,时常用小眼睛往四下找;假 如园中,就是有一道小溪吧,那要多么出色。溪里再有些各色的鱼,有些荷花!那怕是 有个喷水池呢,水声,和着枫叶的轻响,在石台上睡一刻钟,要作出什么有声有色有香 味的梦!花木够了,只缺一点水。 短松墙觉得有点死板,好在发着一些松香;若是上面绕着些密罗松,开着些血红的 小花,也许能减少一些死板气儿。48)园外的几行洋槐很体面,似乎缺少一些小白石凳。 可是继而一想,没有石凳也好,校园的全景,就妙在只有花木,没有多少人工作的点 缀,砖砌的花池咧,绿竹篱咧,全没有;这样,没有人的时候,才真象没有人,连一点 人工经营的痕迹也看不出;换句话说,这才不俗气。
48) 열대 아메리카산으로 관상용으로 심어 기르는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꽃은 7∼8월에 피고 꽃은 색은 주로 붉은색 또는 흰색을 띤다.
啊,又快到夏天了!把去年的又想起来;也许是盼望快放暑假吧。快放暑假吧!把 这个整个的校园,还交给蜂蝶与我吧!太自私了,谁说不是!可是我能念着树影,给诸 位作首不十分好,也还说得过去的诗呢。 学校南边那块瓜地,想起来叫人口中出甜水;但是懒得动;在石凳上等着吧,等太 陽落了,再去买几个瓜吧。自然,这还是去年的话;今年那块地还种瓜吗?管他种瓜还 是种豆呢,反正白石凳还在那里,爬山虎也又绿起来;只等玫瑰开呀!玫瑰开,吃棕 子,下雨,晴天,枫树底下,白石凳上,小蓝蝴蝶,绿槐树虫,哈,梦!再温习温习那 个梦吧。 有诗为证,对,印象是要有诗为证的;不然,那印象必是多少带点土气的。我想写 “春夜”,多么美的题目!想起这个题目,我自然的想作诗了。可是,不是个诗人,怎办 呢;这似乎要“抓瞎”——用个毫无诗味的词儿。新诗吧?太难;脑中虽有几堆“呀,噢, 唉,喽”和那俊美的“;”,和那珠泪滚滚的“!”。但是,没有别的玩艺,怎能把这些宝贝 缀上去呢?此路不通!旧诗?又太死板,而且至少有十几年没动那些七庚八葱的东西 了;不免出丑。 到底硬联成一首七律,一首不及六十分的七律;心中已高兴非常,有胜于无,好歹 不论,正合我的基本哲学。好,再作七首,共合八首;即便没一首“通”的吧,“量”也足惊 人不是?中国地大物博,一人能写八首春夜,呀! 唉!湿膝病又犯了,两膝僵肿,精神不振,终日茫然,饭且不思,何暇作诗,只有 大喊拉倒,予无能为矣!只凑了三首,再也凑不出。 想另作一篇散文吧,又到了交稿子的时候;况且精神不好,其影响于诗与散文一 也;散了吧,好歹的那三首送进去,爱要不要;我就是这个主意!反正无论怎说,我是 有诗为证:
(一) 多少春光轻易去?无言花鸟夜如秋。 东风似梦微添醉,小月知心只照愁! 柳样诗思情入影,火般桃色艳成羞。 谁家玉笛三更后?山倚疏星人倚楼。
(二) 一片闲情诗境里,柳风淡淡析声凉。 山腰月少青松黑,篱畔光多玉李黄。 心静渐知春似海,花深每觉影生香。 何时买得田千顷,遍种梧桐与海棠!
(三) 且莫贪眠减却狂,春宵月色不平常!
碧桃几树开蝴蝶,紫燕联肩梦海棠。 花比诗多怜夜短,柳如人瘦为情长。 年来潦倒漂萍似,惯与东风道暖凉。
得看这三大首!五十年之后,准保有许多人给作注解——好诗是不需注解的。我的 评注者,一定说我是资本家,或是穷而倾向资本主义者,因为在第二首里,有“何时买得 田千顷”之语。好,我先自己作点注吧:我的意思是买山地呀,不是买一千顷良田,全种 上花木,而叫农民饿死,不是。比如千佛山两旁的秃山,要全种上海棠,那要多么美, 这才是我的梦想。这不怨我说话不清,是律诗自身的别扭;一句非七个字不可,我怎能 忽然来句八个九个字的呢? 得了,从此再不受这个罪;《一些印象》也不再续。暑假中好好休息,把腿养好,能 加入将来远东运动会的五百哩竞走,得个第一,那才算英雄好汉;诌几句不准多于七个 字一句的诗,算得什么!
载一九三一年三月至六月《齐大月刊》 第一卷第五、六、七、八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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