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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만 좋으면 그만인가? 정치인의 화법이 말해주는 것

Poohsi&Company 2025. 5. 14. 19:56

 

 

 

 

 

결과만 좋으면 그만인가? 정치인의 화법이 말해주는 것

 

“말이 아니라 성과로 판단해 달라.”

 

최근 정치인의 입에서 자주 들리는 이 말은, 국정을 책임지는 자로서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강한 자신감처럼 들린다. 정치란 결국 정책을 통해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말보다 결과를 중시하겠다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이 점점 자주 반복되고, 다양한 상황에서 마치 면죄부처럼 사용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이면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예전의 정치인은 정책의 철학을 설명하고, 실책에 대해 사과하고, 도덕적 책임을 무겁게 여겼다. 그러나 요즘 정치인의 화법은 명확히 다르다. 핵심은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떻게 보이느냐’이다. 이미지를 지키고, 프레임을 선점하고, 논란을 차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된 듯하다. 성과 중심주의를 앞세운 정치인은 과정의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정치적 공격’이나 ‘정쟁’으로 몰아붙이고, 윤리적 비판을 ‘낡은 구태’로 치부한다. 그 결과, 정치적 책임은 점점 흐려지고, 도덕적 기준은 ‘성과’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다.

 

이러한 화법은 특정 정치인의 전략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방자치단체장 시절부터 강력한 추진력과 눈에 띄는 성과로 주목을 받았다. 성남시장 시절에는 성남시의료원 건립, 청년배당, 무상복지 사업 등을, 경기지사 시절에는 코로나19 대응, 긴급재난지원금, 기본소득 논의 등을 주도하며 ‘실행력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재명은 합니다”, “유능한 경제대통령”과 같은 슬로건은 성과 중심의 화법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행보에는 언제나 논란이 함께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전과 4범이라는 이력, 각종 도덕적·법적 쟁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성과를 강조하며 정면돌파를 택했다. 이는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략과도 유사하다. 이 전 대통령 역시 도덕성 논란이 있었지만 서울시장과 대통령 재임 중 주요 인프라 사업을 전면에 내세우며 '성공한 CEO형 정치인'으로 이미지화했다.

 

정치에서 성과는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 성과가 과장되었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만들어졌거나, 그 이면에 무리한 절차와 인권 침해가 있었다면, 시민은 그것을 진짜 ‘성과’로 받아들여야 할까?

예를 들어 이재명 대표는 신천지에 대한 강제조사, 유흥업소 집중 단속 등에서 ‘단호한 지도자’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언론 노출을 적극 활용했다. 남양주 계곡 정비 사례에서 실제 선도적 역할을 한 다른 자치단체의 노력을 외면하고 “전국 최초”라고 주장하며 성과를 과장한 점도 있다. 대장동 개발의 공익 환수 성과를 강조하면서도, 그 개발의 구조와 의혹을 둘러싼 질문에는 불충분한 해명을 내놓았다. 이처럼 과정을 무시하거나 성과를 포장하는 방식은 시민의 신뢰를 깎아먹는다.

 

또한 공공배달앱 사업은 대표적인 사례다. 민간 플랫폼의 독점을 견제하고 시장에 공공성을 도입한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수익 구조가 불투명했고,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끊이지 않았다. 시장 논리를 무시한 채 성과를 앞세운 결과, 결국 해당 사업은 빠르게 한계에 봉착했다. 이는 정치가 보여주기식 행정에 머물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치인의 도덕성과 언행 일치 문제다. 이재명 대표는 비판자에 대한 과도한 고소·고발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철거민, 지역 유권자, 심지어 언론인까지 고소 대상으로 삼은 일련의 행보는 비판을 억압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지역화폐 정책을 비판한 국책연구기관에 대해 “엄중 문책”을 요구한 발언은, 전문가의 독립성과 정책 비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언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런 행태는 정치가 평가와 토론의 장이 아니라, 비판을 차단하고 지지자 결집만을 위한 전략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인의 언어가 ‘면책용’으로 사용될 때, 민주주의의 기반은 흔들린다. 성과를 내세워 도덕성과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가 반복되면, 시민은 어느 순간 정치로부터 배제된다. 정치는 수단과 절차, 과정의 정당성까지 포함한 총체적 신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성과로 판단하라”는 말이 반복되는 사회에서는, 결국 성과조차도 진실한 평가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시민은 더 이상 그 정치의 언어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정치는 자율적 책임이 아니라 이미지 관리로 환원된다.

 

“이재명은 합니다”는 분명 기억에 남는 슬로건이다. 그러나 ‘한다’는 것의 내용이 투명하지 않고, 그것이 시민의 권리를 어떻게 침해했는지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박정희 시대의 “하면 된다”식 통치가 그랬듯, 절차를 무시한 성과주의는 결국 시민을 소외시키고 정치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정치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과의 약속이며, 윤리적 책임 위에 세워져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결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비민주적이고 비윤리적이었다면,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 결과를 만든 말은, 과연 신뢰할 만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