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高行健的冷文学宣言

🎙️ 高行健的冷文学宣言
가오싱젠의 차가운 문학 선언: 고독한 개인의 목소리
[진행자]: 歡迎收聽。今天我們手裡這份材料可以說非常特別,是 2000 年諾貝爾文學獎得主高行健的獲獎演說。 (huānyíng shōutīng. jīntiān wǒmen shǒulǐ zhèfèn cáiliào kěyǐ shuō fēicháng tèbié, shì èr líng líng líng nián nuòbèi'ěr wénxuéjiǎng dézhǔ gāo xíngjiàn de huòjiǎng yánshuō.) 환영합니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자료는 매우 특별합니다. 바로 200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의 수상 연설문입니다.
[진행자]: 你可以想像一下那個場景:一位作家站在世界文學的最高殿堂上,他會說些什麼?是感謝、還是展望,或者是為文學本身做一次辯護? (nǐ kěyǐ xiǎngxiàng yíxià nàge chǎngjǐng: yíwèi zuòjiā zhàn zài shìjiè wénxué de zuìgāo diàntáng shàng, tā huì shuō xiē shénme? shì gǎnxiè, háishi zhǎnwàng, huòzhě shì wèi wénxué běnshēn zuò yícì biànhù?) 그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한 작가가 세계 문학의 가장 높은 전당에 서서 어떤 말을 할까요? 감사의 인사일까요, 미래에 대한 전망일까요, 아니면 문학 그 자체를 위한 변론일까요?
[패널]: 是的。你這麼一說,這份演說就完全不是一個簡單的獲獎感言了,它幾乎就是一份“文學宣言”。(shìde. nǐ zhème yìshuō, zhèfèn yánshuō jiù wánquán búshì yígè jiǎndān de huòjiǎng gǎnyán le, tā jīhū jiùshì yífèn “wénxué xuānyán”.) 맞습니다. 그렇게 보니 이 연설은 단순한 수상 소감이 아니군요. 거의 하나의 '문학 선언'이나 다름없습니다.
[진행자]: “宣言”這個詞用得好。 ( “xuānyán” zhège cí yòng de hǎo.) '선언'이라는 표현이 아주 적절하네요.
[패널]: 它凝聚了一個作家在那種巨大的歷史動盪裡,所有的思考、掙扎和最後的一種堅守。 (tā níngjù le yígè zuòjiā zài nàzhǒng jùdà de lìshǐ dòngdàng lǐ, suǒyǒu de sīkǎo, zhēngzhá hé zuìhòu de yìzhǒng jiānshǒu.) 거대한 역사의 격랑 속에서 한 작가가 겪은 모든 사유와 고뇌, 그리고 마지막까지 지켜낸 신념이 응축되어 있으니까요.
[1. 문학은 개인의 목소리다: 권력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함]
[진행자]: 說得太好了。所以我們今天的任務就是一起把這份宣言的脈絡梳理一下,特別是去理解他提出了一個核心概念——“冷的文學”。 (shuō de tàihǎo le. suǒyǐ wǒmen jīntiān de rènwu jiùshì yìqǐ bǎ zhèfèn xuānyán de màiluò shūlǐ yíxià, tèbié shì qù lǐjiě tā tíchū le yígè héxīn gàiniàn —— “lěng de wénxué”.) 좋습니다. 그럼 오늘의 임무는 이 선언문의 맥락을 정리하는 것, 특히 가오싱젠이 제시한 핵심 개념인 '차가운 문학'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진행자]: 然後呢,我們再試著把它拉到當下,想想在今天這個時代,一個作家的聲音、或者說我們每個人的聲音到底意味著什麼。所以在開始之前,你可以先想一個問題:你覺得文學的根本目的是什麼?是娛樂我們,還是反映社會? (ránhòune, wǒmen zài shìzhe bǎ tā lādào dāngxià, xiǎngxiang zài jīntiān zhège shídài, yígè zuòjiā de shēngyīn, huòzhě shuō wǒmen měigè rén de shēngyīn dàodǐ yìwèizhē shénme. suǒyǐ zài kāishǐ zhīqián, nǐ kěyǐ xiān xiǎng yígè wèntí: nǐ juéde wénxué de gēnběn mùdì shì shénme? shì yúlé wǒmen, háishi fǎnyìng shèhuì?) 나아가 이를 현재로 끌어와 오늘날 작가의 목소리, 혹은 우리 개개인의 목소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생각해보려 합니다.시작하기 전에 질문 하나를 던져볼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문학의 근본 목적은 무엇인가요? 유희인가요, 사회의 반영인가요?
[진행자]: 好,帶著這個問題,我們開始今天的探討。我們先看演說的開頭。他一上來就拋出了一個聽起來可能有點反直覺的觀點,他說:文學只能是個人的聲音,而且從來如此。 (hǎo, dàizhē zhège wèntí, wǒmen kāishǐ jīntiān de tàntǎo. wǒmen xiān kàn yánshuō de kāitóu. tā yí shànglái jiù pāochū le yígè tīngqǐlái kěnéng yǒudiǎn fǎn zhíjué de guāndiǎn, tā shuō: wénxué zhǐnéng shì gèrén de shēngyīn, érqiě cónglái rúcǐ.) 자, 이 질문을 품고 오늘의 대화를 시작해 보죠. 연설의 도입부를 보면 가오싱젠은 직관에 어긋나는 듯한 관점을 던집니다. 문학은 오직 개인의 목소리여야 하며, 역사적으로 늘 그래왔다는 것이죠.
[진행자]: 他還引用了一句:“一個作家不以人民的代言人或正義的化聲(身)說話,那聲音不能不微弱,然而恰恰是這種個人的聲音倒更為真實。” (tā hái yǐnyòng le yíjù: “yígè zuòjiā bù yǐ rénmín de dàiyánrén huò zhèngyì de huàshēn shuōhuà, nà shēngyīn bùnéng bù wēiruò, rán'ér qiàqià shì zhèzhǒng gèrén de shēngyīn dào gèngwéi zhēnshí”.)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가가 인민의 대변자나 정의의 화신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그 목소리는 미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개인의 목소리야말로 훨씬 진실되다."
[패널]: 對,這句話很重。 (duì, zhèjù huà hěn zhòng.) 네, 묵직한 한마디네요.
[진행자]: 我就在想,很多人可能會覺得奇怪啊,作家不就應該為國為民發聲嗎?為什麼他反而要跟這些聽起來很“高大上”的概念劃清界限? (wǒ jiù zài xiǎng, hěnduō rén kěnéng huì juéde qíguài a, zuòjiā bù jiù yīnggāi wèi guó wèi mín fāshēng ma? wèishénme tā fǎn'ér yào gēn zhèxiē tīngqǐlái hěn “gāodàshàng” de gàiniàn huàqīng jièxiàn?) 궁금한 게, 보통 작가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들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왜 그는 이런 거창하고 숭고해 보이는 개념들과 선을 그으려 했을까요?
[패널]: 要理解他為什麼這麼說,就得先看看他說話的那個歷史背景。他在演說裡提了一個詞兒,叫“尼采之後的那一個世紀”。 (yào lǐjiě tā wèishénme zhème shuō, jiù děi xiān kànkan tā shuōhuà de nàge lìshǐ bèijǐng. tā zài yánshuō lǐ tí le yígè cír, jiào “nícǎi zhīhòu de nà yígè shìjì”.) 그 이유를 알려면 그가 말한 역사적 배경을 봐야 합니다.그는 연설에서 '니체 이후의 한 세기'라는 표현을 썼어요.
[진행자]: 也就是 20 世紀。 (yějiùshì èrshí shìjì.) 바로 20세기를 말하는군요.
[패널]: 沒錯。你想想那個是個什麼樣的世紀啊?充滿了各種號稱為人民領袖、國家元首的“超人”。那結果呢?結果給人類帶來了最慘痛的災難。 (méicuò. nǐ xiǎngxiang nàge shìgè shénmeyàng de shìjì a? chōngmǎn le gèzhǒng hàochéng wéi rénmín lǐngxiù, guójiā yuánshǒu de “chāorén”. nà jiéguǒ ne? jiéguǒ gěi rénlèi dàilái le zuì cǎntòng de zāinàn.) 그렇죠. 20세기가 어떤 시대였습니까? 인민의 지도자나 국가의 원수를 자처하는 온갖 '초인'들이 넘쳐났죠. 결과는 어땠나요? 인류에게 가장 처참한 재앙을 안겨주었습니다.
[패널]: 所以他的邏輯其實很簡單,就是說:一旦文學開始為國家、政黨唱讚歌,或者揮舞民族大旗,那它就不再是文學了。 (suǒyǐ tā de luójí qíshí hěn jiǎndān, jiùshì shuō: yídàn wénxué kāishǐ wèi guójiā, zhèngdǎng chàng zàngē, huòzhě huīwǔ mínzú dàqí, nà tā jiù búzài shì wénxué le.) 그래서 그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문학이 국가나 정당을 위해 찬가를 부르고 민족의 깃발을 흔들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문학이 아니라는 겁니다.
[진행자]: 它就變成了…… (tā jiù biànchéng le……) 그렇게 되면 문학은...
[패널]: 對,它變成了權力的工具,變成了利益的代用品。 (duì, tā biànchéng le quánlì de gōngjù, biànchéng le lìyì de dàiyòngpǐn.) 네, 권력의 도구이자 이익의 대용품으로 전락하고 말죠.
[진행자]: 我明白了。所以這根本不是一個純粹的文學理論問題,背後是他親身經歷過的、可以說是血淚教訓。 (wǒ míngbai le. suǒyǐ zhè gēnběn búshì yígè chúncuì de wénxué lǐlùn wèntí, bèihòu shì tā qīnshēn jīnglì guò de,kěyǐ shuō shì xuèlèi jiàoxun.) 알겠습니다. 이건 단순히 문학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직접 겪은 피와 눈물의 교훈이었군요.
[패널]: 完全正確。他特別提到了 20 世紀中國文學的劫難。他說根源就是“政治主宰文學”。這種主宰的後果是什麼?就是作家要么被迫害,要么作品被查禁。 (wánquán zhèngquè. tā tèbié tídào le èrshí shìjì zhōngguó wénxué de jiénàn. tā shuō gēnyuán jiùshì “zhèngzhì zhǔzǎi wénxué”. zhèzhǒng zhǔzǎi de hòuguǒ shì shénme? jiùshì zuòjiā yàome bèi pòhài, yàome zuòpǐn bèi chájìn.) 정확합니다. 그는 20세기 중국 문학의 수난을 언급하며 그 근원이 '정치가 문학을 지배한 것'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작가들은 박해받거나 작품이 금지당했죠.
[패널]: 他自己就經歷過這一切,所以當他這麼用力地強調個人聲音的時候,他背後其實是那種沈重的、喘不過氣的歷史回響。這也為他後面要說的所有觀點都鋪上了一層很悲劇的底色。 (tā zìjǐ jiù jīnglì guò zhè yíqiè, suǒyǐ dāng tā zhème yònglì dì qiángdiào gèrén shēngyīn de shíhou, tā bèihòu qíshí shì nàzhǒng chénzhòng de,chuǎnbúguòqì de lìshǐ huíxiǎng. zhè yě wèi tā hòumiàn yào shuō de suǒyǒu guāndiǎn dōu pūshàng le yìcéng hěn bēijù de dǐsè.) 본인이 그 모든 과정을 겪었기에 개인의 목소리를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숨이 막힐 듯 무거운 역사의 메아리가 깔려 있고, 이는 연설 전체에 비극적인 색채를 부여합니다.
[2. 침묵과 도망: 문학의 기점인 '자언자어(自言自語)']
[진행자]: 這就讓問題變得非常尖銳了。如果一個作家真的要堅持發出自己的聲音,但環境就是不允許,那他該怎麼辦?高行健給出的答案說實話聽起來特別殘酷,他說:作家倘若想要贏得思想的自由,除了“沈默”,便是“逃亡”。 (zhè jiù ràng wèntí biàndé fēicháng jiānruì le. rúguǒ yígè zuòjiā zhēn de yào jiānchí fāchū zìjǐ de shēngyīn, dàn huánjìng jiùshì bù yǔnxǔ, nà tā gāi zěnme bàn? gāo xíngjiàn gěichū de dá'àn shuō shíhuà tīngqǐlái tèbié cánkù, tā shuō: zuòjiā tǎngruò xiǎngyào yíngdé sīxiǎng de zìyóu, chúle “chénmò”, biànshì “táowáng”.) 질문이 아주 날카로워지네요.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오싱젠의 답은 참혹합니다. 사상의 자유를 얻으려면 '침묵'하거나 '도망'칠 수밖에 없다고 했으니까요.
[패널]: 這兩個詞兒分量非常重。我們一個一個來看。先說“沈默”。對於一個靠語言活著的人來說,沈默意味著什麼?他後面補充了一句:如果長時間無言,也如同自殺。 (zhè liǎnggè cír fènliàng fēicháng zhòng.wǒmen yígè yígè lái kàn. xiān shuō “chénmò”. duìyú yígè kào yǔyán huózhe de rén láishuō, chénmò yìwèizhē shénme? tā hòumiàn bǔchōng le yíjù: rúguǒ chángshíjiān wúyán, yě rútóng zìshā.) 두 단어의 무게가 상당하죠. 우선 '침묵'을 보죠.언어를 먹고 사는 작가에게 침묵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진행자]: 精神上的自殺。 (jīngshén shàng de zìshā.) 정신적인 자살이군요.
[패널]: 對。不是肉體上的,而是一種精神上的自我了斷。你的存在感、你的思想就在這個沈默裡一點一點地熄滅。 (duì. búshì ròutǐ shàng de, érshì yìzhǒng jīngshén shàng de zìwǒ liǎoduàn. nǐ de cúnzàigǎn, nǐ de sīxiǎng jiù zài zhège chénmò lǐ yìdiǎn yìdiǎn dì xīmiè.) 네. 육체는 살아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론 스스로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존재감과 사유가 서서히 꺼져가는 것이죠.
[진행자]: 那“逃亡”呢?這個聽起來好像更積極一點兒,但代價也巨大。他列舉了一長串名字:從中國屈原到西方的但丁、喬伊斯…… (nà “táowáng” ne? zhège tīngqǐlái hǎoxiàng gèng jījí yìdiǎnr, dàn dàijià yě jùdà. tā lièjǔ le yìchángchuàn míngzi: cóng zhōngguó qū yuán dào xīfāng de dàndīng, qiáoyīsī……) 그럼 '도망(망명)'은 어떨까요? 좀 더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대가가 큽니다. 그는 굴원부터 단테, 조이스까지 긴 명단을 열거했죠.
[패널]: 再到索爾仁尼琴,最後是他自己這一代人。 (zàidào suǒ'ěr-rén-ní-qín, zuìhòu shì tā zìjǐ zhè yídài rén.) 솔제니친을 거쳐 가오싱젠 자신과 그 세대 작가들까지요.
[진행자]: 這好像是古今中外作家的一種宿命。 (zhè hǎoxiàng shì gǔjīn-zhōngwài zuòjiā de yìzhǒng sùmìng.) 동서고금을 막론한 작가들의 숙명 같기도 하네요.
[패널]: 的(對)。逃亡在這裡已經不只是說換個地方住那麼簡單了,它是一種為了保住自己的聲音、為了精神自救而採取的一種極端行動。但更有意思的在後面。 (duì. táowáng zài zhèlǐ yǐjīng bùzhǐshì shuō huàn gè dìfang zhù nàme jiǎndān le, tā shì yìzhǒng wèile bǎozhù zìjǐ de shēngyīn, wèile jīngshén zìjiù ér cǎiqǔ de yìzhǒng jíduān xíngdòng. dàn gèng yǒuyìsi de zài hòumiàn.) 맞아요. 여기서 도망은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지키고 정신을 구원하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이죠. 그런데 뒤에 더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패널]: 他認為正是在這種被壓到極致的狀態下,文學才歸回到了它最開始、最本原的樣子。他說:自言自語可以說是文學的起點,而藉語言而交流則在其(次)。 (tā rènwéi zhèngshì zài zhèzhǒng bèi yādào jízhì de zhuàngtài xià, wénxué cái guīhuí dào le tā zuì kāishǐ, zuì běnyuán de yàngzi. tā shuō: zìyán-zìyǔ kěyǐ shuō shì wénxué de qǐdiǎn, ér jiè yǔyán ér jiāoliú zé zài qícì.) 그는 극한의 억압 상태에서 문학이 비로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보았습니다. "혼잣말(독백)이 문학의 기점이고, 언어를 통한 소통은 그다음이다"라고 말이죠.
[진행자]: 等一下。他說文學的起點是“自言自語”?這個我有點兒難理解。如果一本書寫出來沒人看,那它的意義在哪兒呢?我一直都覺得作品是需要讀者才算完成。 (děng yíxià. tā shuō wénxué de qǐdiǎn shì “zìyán-zìyǔ”? zhège wǒ yǒudiǎnr nán lǐjiě. rúguǒ yìběn shū xiě chūlái méi rén kàn, nà tā de yìyì zài nǎr ne? wǒ yìzhí dōu juéde zuòpǐn shì xūyào dúzhě cái suàn wánchéng.) 잠깐만요. 문학의 시작이 '혼잣말'이라고요? 좀 이해하기 어렵네요.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책의 의미가 있을까요? 전 늘 독자가 있어야 작품이 완성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패널]: 對。這恰恰是他思想裡最顛覆性的一個地方。他認為在那種極端的環境下,寫作首先要滿足的不是跟別人交流的慾望…… (duì. zhè qiàqià shì tā sīxiǎng lǐ zuì diānfùxìng de yígè dìfang. tā rènwéi zài nàzhǒng jíduān de huánjìng xià, xiězuò shǒuxiān yào mǎnzú de búshì gēn biérén jiāoliú de yùwàng……) 맞습니다. 그게 바로 그의 사상 중 가장 파격적인 대목이죠. 극한 상황에서의 글쓰기는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진행자]: 而是? (érshì?) 그럼 무엇을 위한 건가요?
[패널]: 而是確認自己存在的需要。你想,當外部世界不讓你說話,甚至想抹掉你的時候兒,你只能對自己說話,通過這種方式來確認:我還活著,我還是有獨立思想的人。 (érshì quèrèn zìjǐ cúnzài de xūyào. nǐ xiǎng,dāng wàibù shìjiè bù ràng nǐ shuōhuà, shènzhì xiǎng mǒdiào nǐ de shíhour, nǐ zhǐnéng duì zìjǐ shuōhuà, tōngguò zhèzhǒng fāngshì lái quèrèn: wǒ hái huózhe, wǒ háishì yǒu dúlì sīxiǎng de rén.)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욕구입니다. 외부 세계가 입을 막고 나라는 존재를 지우려 할 때, 오직 자신에게 말을 건넴으로써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이다"라고 확인하는 것이죠.
[진행자]: 我明白了。 (wǒ míngbai le.) 알겠습니다.
[패널]: 所以他才說是文學讓人還保持人的意識。這是一種內在的一種自我拯救。 (suǒyǐ tā cái shuō shì wénxué ràng rén hái bǎochí rén de yìshí. zhè shì yìzhǒng nèizài de yìzhǒng zìwǒ zhěngjiù.) 그래서 문학이 인간으로서의 의식을 유지하게 해준다고 한 것입니다. 일종의 내면적 자기 구원인 셈이죠.
[3. 아표수고재(我表述故我在): 존재 증명으로서의 쓰기]
[진행자] 所以就帶來一個問題:既然寫作環境這麼糟,甚至都不能發表,那一個作家到底為什麼還要寫?他好像用自己的親身經歷回答了這個問題。 (suǒyǐ jiù dàilái yígè wèntí: jìrán xiězuò huánjìng zhème zāo, shènzhì dōu bùnéng fābiǎo, nà yígè zuòjiā dàodǐ wèishénme hái yào xiě? tā hǎoxiàng yòng zìjǐ de qīnshēn jīnglì huídá le zhège wèntí.) 그럼 질문이 생깁니다. 글 쓸 환경도 나쁘고 발표할 수도 없는데, 작가는 도대체 왜 쓰는 걸까요? 가오싱젠은 자신의 경험으로 답을 했죠.
[패널]: 錯(對)。他提到自己的長篇小說《靈山》動筆的時候,他的作品在國內已經被禁了,他完全不指望能發表。 (duì. tā tídào zìjǐ de chángpiān xiǎoshuō "Língshān" dòngbǐ de shíhou, tā de zuòpǐn zài guónèi yǐjīng bèi jìn le, tā wánquán bù zhǐwàng néng fābiǎo.) 맞아요. 장편소설 『영산』을 집필할 당시, 그의 작품들은 이미 국내에서 금지된 상태였습니다. 발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없었죠.
[진행자]: 那為什麼還要寫一部百萬字的大書? (nà wèishénme hái yào xiě yíbù bǎiwàn zì de dàshū?) 그런데 왜 백만 자가 넘는 방대한 글을 썼을까요?
[패널]: 他說純粹是為了排遣內心的寂寞,是為自己而寫。在這裡他就提出了一個關鍵的論斷,他說:“文學就其根本乃是人對自身價值的確認,書寫其實便已得到肯定。” (tā shuō chúncuì shì wèile páiqiǎn nèixīn de jìmò, shì wèi zìjǐ ér xiě. zài zhèlǐ tā jiù tíchū le yígè guānjiàn de lùnduàn, tā shuō: “wénxué jiù qí gēnběn nǎishì rén duì zìshēn jiàzhí de quèrèn, shūxiě qíshí biàn yǐ dédào kěndìng”.) 오로지 내면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신을 위해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핵심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문학의 근본은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며, 쓰는 행위 자체로 이미 긍정받은 것과 다름없다"라고요.
[진행자]: 也就是說,寫作這個行為本身,就是對作者最大的回報和肯定。 (yějiùshì shuō, xiězuò zhège xíngwéi běnshēn, jiùshì duì zuòzhě zuìdà de huíbào hé kěndìng.)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가 작가에게는 가장 큰 보상이자 긍정이라는 뜻이군요.
[패널]: 正是如此。這個觀點在今天聽起來可能有點兒不可思議,因為我們身邊的一切,什麼點贊哪、轉發呀、流量啊,都在強調外部的認可。 (zhèngshì rúcǐ. zhège guāndiǎn zài jīntiān tīngqǐlái kěnéng yǒudiǎnr bùkě-sīyì,yīnwèi wǒmen shēnbiān de yíqiè, shénme diǎnzàn na, zhuǎnfā ya, liúliàng a, dōu zài qiángdiào wàibù de rènkě.) 그렇습니다. '좋아요', '공유', '조회수' 등 외부의 인정에 매몰된 오늘날에는 참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관점이죠.
[패널]: 但他恰恰在提醒我們,最純粹的創造動力是寫作過程本身帶來的那種自我確認的慰藉。他舉的例子都特別有說服力。 (dàn tā qiàqià zài tíxǐng wǒmen, zuì chúncuì de chuàngzào dònglì shì xiězuò guòchéng běnshēn dàilái de nàzhǒng zìwǒ quèrèn de wèijiè. tā jǔ de lìzi dōu tèbié yǒu shuōfúlì.) 하지만 그는 창작의 가장 순수한 동력은 쓰는 과정에서 얻는 자기 확인의 위안이라고 일깨워줍니다. 그가 든 예시들도 설득력이 있죠.
[진행자]: 比如《紅樓夢》的作者曹雪芹。 (bǐrú "Hónglóumèng" de zuòzhě cáo xuěqín.) 『홍루몽』의 조설근 같은 경우 말이죠.
[패널]: 對。還有西方的卡夫카. 我第一次讀卡夫卡作品的時候兒,完全想不到他生前基本就是個小透明。支撐他們寫下去的,真的就是寫作本身。 (duì. hái yǒu xīfāng de kǎfúkǎ. wǒ dìyīcì dú kǎfúkǎ zuòpǐn de shíhour,wánquán xiǎngbùdào tā shēngqián jīběn jiùshì gè xiǎotòumíng. zhīchēng tāmen xiěxiàqù de, zhēn de jiùshì xiězuò běnshēn.) 네, 서양의 카프카도요. 카프카가 생전에 거의 무명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그들을 버티게 한 건 오로지 글쓰기 그 자체였습니다.
[진행자]: 我注意到他為了強調這個觀點,還借用了笛卡爾那句名言“我思故我在”,然後給出了一個作家版本。 (wǒ zhùyì dào tā wèile qiángdiào zhège guāndiǎn, hái jièyòng le díkǎ'ěr nàjù míngyán “wǒ sī gù wǒ zài”, ránhòu gěichū le yígè zuòjiā bǎnběn.)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패러디한 작가 버전의 명언도 남겼더군요.
[패널]: 是的,這句是點睛之筆,他說:“我表述故我在”。 (shìde, zhèjù shì diǎnjīng-zhībǐ, tā shuō: “wǒ biǎoshù gù wǒ zài”.) 연설의 백미죠. "나는 표현한다(진술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진행자]: “我表述故我在”。 ( “wǒ biǎoshù gù wǒ zài”.) "아표수고재(我表述故我在)."
[패널]: 他這麼一說,寫作就不再是簡單地寫個故事了,而是上升到了一個哲學高度。就是說:我通過語言和表達,來證明我真實地存在著。 (tā zhème yìshuō, xiězuò jiù búzàishì jiǎndān dì xiě gè gùshi le, érshì shàngshēng dào le yígè zhéxué gāodù. jiùshì shuō: wǒ tōngguò yǔyán hé biǎodá, lái zhèngmíng wǒ zhēnshí dì cúnzàizhē.) 글쓰기가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차원을 넘어 철학적 층위로 격상된 것입니다. 언어와 표현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것이죠.
[패널]:這是一種完全超越了功利、超越了社會評價的一種純粹的精神活動。語言不再僅僅是工具,而是你傾聽自己內心、確認自己存在的方式。 (zhè shì yìzhǒng wánquán chāoyuè le gōnglì, chāoyuè le shèhuì píngjià de yìzhǒng chúncuì de jīngshén huódòng. yǔyán búzài jǐnjǐn shì gōngjù, érshì nǐ qīngtīng zìjǐ nèixīn, quèrèn zìjǐ cúnzài de fāngshì.) 공리주의와 사회적 평가를 완전히 초월한 순수 정신 활동인 셈입니다.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 됩니다.
[진행자]: 而且他從這裡又延伸出去,反對給作家貼上那種狹隘的“民族”或者“地域”標籤。因為他覺得文學最終要說的是人類普遍相通的人性,這個東西是能跨越國際和時代的。 (érqiě tā cóng zhèlǐ yòu yánshēn chūqù, fǎnduì gěi zuòjiā tiēshàng nàzhǒng xiá'ài de “mínzú” huòzhě “dìyù” biāoqiān. yīnwèi tā juéde wénxué zuìzhōng yào shuō de shì rénlèi pǔbiàn xiāngtōng de rénxìng, zhège dōngxi shì néng kuàyuè guójì hé shídài de.)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에게 '민족'이나 '지역' 같은 편협한 라벨을 붙이는 것에도 반대했습니다. 문학이 궁극적으로 다루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해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인성(人性)'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패널]: 串兒(沒錯)。因為一旦你把文學框在某個民族或者某個主義裡,它就又回到了“為集體服務”的那個功利目的上去了。 (méicuò. yīnwèi yídàn nǐ bǎ wénxué kuàng zài mǒugè mínzú huòzhě mǒugè zhǔyì lǐ, tā jiù yòu huídào le “wèi jítǐ fúwù” de nàge gōnglì mùdì shàngqù le.) 맞습니다. 문학을 특정 민족이나 이념의 틀에 가두는 순간,다시 집단을 위한 도구라는 공리적 목적으로 회귀하고 마니까요.
[패널]: 而這恰恰是他從一開始就極力反對的。文學之所以能超越時間,就是因為它能關照到每一個具體的、活生生的個體所面臨的那些普遍的困境。 (ér zhè qiàqià shì tā cóng yì kāishǐ jiù jílì fǎnduì de. wénxué zhīsuǒyǐ néng chāoyuè shíjiān, jiùshì yīnwèi tā néng guānzhào dào měiyígè jùtǐ de, huóshēngshēng de gètǐ suǒ miànlín de nàxiē pǔbiàn de kùnjìng.) 그것이 가오싱젠이 가장 경계했던 부분입니다. 문학이 영원할 수 있는 이유는 살아있는 개개인이 마주한 보편적인 실존적 고난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4. 차가운 문학: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의 정신적 자구책]
[진행자]: 好了,這麼層層鋪墊下來,我們終於走到了他在這篇演說裡提出的最核心也最耐人尋味的一個概念——“冷的文學”。這個詞第一感覺有點兒古奧,甚至有點兒拒人千里之外。它到底是什麼意思?冷在哪裡? (hǎole, zhème céngcéng pūdiàn xiàlái, wǒmen zhōngyú zǒudào le tā zài zhèpiān yánshuō lǐ tíchū de zuì héxīn yě zuì nàirén-xúnwèi de yígè gàiniàn —— “lěng de wénxué”. zhège cí dìyī gǎnjué yǒudiǎnr gǔ'ào, shènzhì yǒudiǎnr jù rén qiānlǐ zhī wài. tā dàodǐ shì shénme yìsi? lěng zài nǎlǐ?) 자, 이제 연설의 가장 핵심적이고도 오묘한 개념인 '차가운 문학(冷文學)'에 도달했네요. 처음 들으면 좀 어렵고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무엇이 '차갑다'는 거죠?
[패널]: 要理解“冷”,得先想想它的反面兒是什麼,也就是“熱”。對。 (yào lǐjiě “lěng”, děi xiān xiǎngxiang tā de fǎnmiànr shì shénme, yějiùshì “rè”. duì.) '차가움'을 이해하려면 반대인 '뜨거움(熱)'이 무엇인지 봐야 합니다.
[패널]: 在過去,這種“熱”可能是狂熱的政治運動、集體的口號;而在今天,這種“熱”可能就是社交媒體上的熱門話題、商業排行榜上的暢銷書、追求流量的爆款文章。 (zài guòqù, zhèzhǒng “rè” kěnéng shì kuángrè de zhèngzhì yùndòng, jítǐ de kǒuhào; ér zài jīntiān, zhèzhǒng “rè” kěnéng jiùshì shèjiāo méitǐ shàng de rèmén huàtí, shāngyè páihángbǎng shàng de chàngxiāoshū, zhuīqiú liúliàng de bàokuǎn wénzhāng.) 과거의 '뜨거움'이 광적인 정치 운동이나 집단적 구호였다면, 오늘날의 '뜨거움'은 SNS의 핫이슈, 베스트셀러 순위, 조회수를 쫓는 자극적인 글들이겠죠.
[진행자]: 我明白了。所有這些喧囂的、功利的東西都是“熱”。 (wǒ míngbai le. suǒyǒu zhèxiē xuānxiāo de,gōnglì de dōngxi dōu shì “rè”.) 알겠습니다. 세속적인 소음과 공리적인 목적들이 전부 '뜨거움'이군요.
[패널]: 所以“冷的文學”就是一種主動的選擇,選擇遠離這種“熱”。 (suǒyǐ “lěng de wénxué” jiùshì yìzhǒng zhǔdòng de xuǎnzé, xuǎnzé yuǎnlí zhèzhǒng “rè”.) 따라서 '차가운 문학'이란 이러한 '뜨거움'으로부터 멀어지겠다는 자발적인 선택입니다.
[패널]: 可以這麼說。他自己也給出了幾個特點:第一,動機是純粹的,跟政治、商業都沒關係,純粹是個人的事兒;第二,姿態是獨立的,作家只是一個人在說話、在寫作,別人愛聽不聽,愛讀不讀。 (kěyǐ zhème shuō. tā zìjǐ yě gěichū le jǐgè tèdiǎn: dìyī, dòngjī shì chúncuì de, gēn zhèngzhì, shāngyè dōu méiguānxi, chúncuì shì gèrén de shìr; dì'èr, zītài shì dúlì de, zuòjiā zhǐshì yígè rén zài shuōhuà, zài xiězuò, biérén ài tīng bù tīng, ài dú bù dú.) 그렇습니다. 그는 몇 가지 특징을 꼽았어요. 첫째, 동기가 순수합니다. 정치나 비즈니스와 무관한 철저히 개인적인 일이죠. 둘째, 태도가 독립적입니다. 작가는 그저 혼자 말하고 쓸 뿐이며, 남들이 읽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패널]: 這就引出了第三點:它對大眾是無義務的,不負責教化大眾。 (zhè jiù yǐnchū le dìsāndiǎn: tā duì dàzhòng shì wú yìwù de, bù fùzé jiàohuà dàzhòng.) 여기서 세 번째 특징이 나옵니다. 대중에게 아무런 의무가 없으며, 그들을 계몽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죠.
[진행자]: 不負責教化。 (bù fùzé jiàohuà.)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패널]: 對。最後他把這種文學稱作一種“精神奢侈品”,是人在滿足了吃穿住行這些基本需求之後,一種純粹的精神追求。 (duì. zuìhòu tā bǎ zhèzhǒng wénxué chēngzuò yìzhǒng “jīngshén shēchǐpǐn”, shì rén zài mǎnzú le chīchuān-zhùxíng zhèxiē jīběn xūqiú zhīhòu, yìzhǒng chúncuì de jīngshén zhuīqiú.) 네. 그는 이를 '정신적 사치품'이라 불렀습니다. 의식주라는 기본 욕구가 충족된 뒤에 누리는 순수한 정신적 추구라는 뜻이죠.
[패널]: 他還有一個定義,我覺得說得特別透徹也特別有力,他說:“冷的文學是一種逃亡而求其存在的文學,是一種不讓社會扼殺而求得精神上自救文學。” (tā háiyǒu yígè dìngyì, wǒ juéde shuō de tèbié tòuchè yě tèbié yǒulì, tā shuō: “lěng de wénxué shì yìzhǒng táowáng ér qiú qí cúnzài de wénxué, shì yìzhǒng bú ràng shèhuì èshā ér qiúdé jīngshén shàng zìjiù wénxué”.) 가장 강렬한 정의는 이겁니다. "차가운 문학은 도망침으로써 실존을 구하는 문학이며, 사회에 의해 말살당하지 않기 위해 정신적 자구책을 찾는 문학이다."
[진행자]: “精神上自救的文學”,這個說法太精準了。他不是要去改變世界,而是在這個喧囂的世界裡為自己守護一片精神的自留地,保護一種純粹的精神活動能夠幸存下來。 ( “jīngshén shàng zìjiù de wénxué”, zhège shuōfǎ tài jīngzhǔn le. tā búshì yào qù gǎibiàn shìjiè, érshì zài zhège xuānxiāo de shìjiè lǐ wèi zìjǐ shǒuhù yípiàn jīngshén de zìliúdì, bǎohù yìzhǒng chúncuì de jīngshén huódòng nénggòu xìngcún xiàlái.) '정신적 자호(自護)의 문학', 정말 정확한 표현이네요.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정신적 텃밭을 일구고 순수한 사유가 살아남게 하려는 노력이군요.
[패널]: 是的。所以他最後才感慨說:一個民族要是連這樣一種非功利的文學都容不下,那不光是作家的不幸,更是這個民族的悲哀。 (shìde. suǒyǐ tā zuìhòu cái gǎnkǎi shuō: yígè mínzú yàoshì lián zhèyàng yìzhǒng fēi gōnglì de wénxué dōu róngbúxià, nà bùguāng shì zuòjiā de búxìng, gèngshì zhège mínzú de bēi'āi.) 그렇죠. 그래서 그는 "한 민족이 이런 비공리적인 문학조차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민족의 비극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패널]: 這句話分量很重。這種“冷的文學”的存在與否,就好像一個民族精神健康度的風向標。 (zhèjù huà fènliàng hěn zhòng. zhèzhǒng “lěng de wénxué” de cúnzài yǔfǒu, jiù hǎoxiàng yígè mínzú jīngshén jiànkāngdù de fēngxiàngbiāo.) 아주 뼈아픈 말입니다. '차가운 문학'의 존립 여부가 한 민족의 정신적 건강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는 셈입니다.
[5. 문학의 최고 윤리: 진실(真實)]
[진행자]: 這就帶來一個新問題了:如果這種“冷的文學”不為任何人負責,只為了自我確認,那它有沒有自己的標準呢?總不能是想怎麼寫就怎麼寫吧? (zhè jiù dàilái yígè xīn wèntí le: rúguǒ zhèzhǒng “lěng de wénxué” bù wèi rènhé rén fùzé, zhǐ wèile zìwǒ quèrèn, nà tā yǒu méiyǒu zìjǐ de biāozhǔn ne? zǒng bùnéng shì xiǎng zěnme xiě jiù zěnme xiě ba?) 새로운 의문이 생기네요. '차가운 문학'이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고 오직 자기 확인만을 위한다면,그 나름의 기준은 있을까요? 그냥 내키는 대로 막 써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패널]: 問到點子上了。他當然有標準,而且是一個至高無上的標準。高行健給出的答案只有一個詞:真實。 (wèn dào diǎnzishàng le. tā dāngrán yǒu biāozhǔn, érqiě shì yígè zhìgāo-wúshàng de biāozhǔn. gāo xíngjiàn gěichū de dá'àn zhǐyǒu yígè cí: zhēnshí.) 정곡을 찌르셨네요. 당연히 지고지순한 기준이 있습니다. 가오싱젠이 제시한 답은 오직 하나, '진실'입니다.
[패널]: 對。他把“真”提到了一個前所未有的高度。他說:“呈現真實之於文學,對作家來說幾乎等同於倫理,而且是文學至高無上的倫理。” (duì. tā bǎ “zhēn” tídào le yígè qiánsuǒ-wèiyǒu de gāodù. tā shuō: “chéngxiàn zhēnshí zhī yú wénxué, duì zuòjiā láishuō jīhū děngtóngyú lúnlǐ, érqiě shì wénxué zhìgāo-wúshàng de lúnlǐ”.) 그는 진실을 전례 없는 높이로 끌어올렸습니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작가에게 윤리와도 같으며, 문학의 가장 높은 도덕적 기준"이라고 했죠.
[진행자]: “至高無上的倫理”,這個說法很重。而且他好像也特意區分了“文學的真實”和我們平時說的“事實”。 ( “zhìgāo-wúshàng de lúnlǐ”, zhège shuōfǎ hěn zhòng. érqiě tā hǎoxiàng yě tèyì qūfēn le “wénxué de zhēnshí” hé wǒmen píngshí shuō de “shìshí”.) '지고지순한 윤리'라니, 참 엄중한 표현이네요. 그런데 그는 '문학적 진실'과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팩트(사실)'를 구분하는 것 같더라고요.
[패널]: 對。他強調文學的真實不是簡單地記錄事實,不是新聞報導。因為歷史和真實留給我們的“事實”往往是稀少、模糊、甚且是被掩蓋過的。 (duì. tā qiángdiào wénxué de zhēnshí búshì jiǎndān dì jìlù shìshí, búshì xīnwén bàodǎo. yīnwèi lìshǐ hé zhēnshí liú gěi wǒmen de “shìshí” wǎngwǎng shì xīshǎo, móhu, shènqiě shì bèi yǎngài guò de.) 네. 문학적 진실은 단순한 사실의 기록이나 뉴스 보도가 아닙니다. 역사와 현실이 우리에게 남긴 '사실'은 대개 파편적이고 모호하며, 심지어 은폐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패널]: 文學的獨特價值恰恰在於它能深入人的內心,去呈現事件過程中人的真實感受、真實處境和生存狀況。它關心的是“人的真實”。 (wénxué de dútè jiàzhí qiàqià zàiyú tā néng shēnrù rén de nèixīn, qù chéngxiàn shìjiàn guòchéng zhōng rén de zhēnshí gǎnshòu, zhēnshí chǔjìng hé shēngcún zhuàngkuàng. tā guānxīn de shì “rén de zhēnshí”.) 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사건 속에서 겪은 개인의 진실한 감정, 처지, 생존 조건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즉 '인간적인 진실'에 주목하는 것이죠.
[진행자]: 這聽起來對作家的要求非常高。 (zhè tīngqǐlái duì zuòjiā de yāoqiú fēicháng gāo.) 작가에게 요구되는 수준이 정말 높네요.
[패널]: 非常高。他接著就把“真實”和“真誠”聯繫到了一起。他說:筆下是否真實,同時也就意味著下筆是否真誠。 (fēicháng gāo. tā jiēzhē jiù bǎ “zhēnshí” hé “zhēnchéng” liánxì dào le yìqǐ. tā shuō: bǐxià shìfǒu zhēnshí,tóngshí yě jiù yìwèizhē xiàbǐ shìfǒu zhēnchéng.) 그렇죠. 그는 '진실'을 곧 '진실함(진정성)'과 연결시켰습니다. 글의 진실 여부는 곧 쓰는 이의 진정성 문제라는 겁니다.
[패널]:這一下子就把文學創作從一個“寫作技巧好不好”的問題,上升到了作者的“人格和態度”問題。(zhè yíxiàzi jiù bǎ wénxué chuàngzào cóng yígè “xiězuò jìqiǎo hǎobùhǎo” de wèntí, shàngshēng dào le zuòzhě de “réngé hé tàidù” wèntí.) 문학 창작이 '기술이 좋으냐'의 차원을 넘어 작가의 '인격과 태도'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진행자]: 也就是說,你敢不敢真誠地面對你筆下的人物,更重要的是,敢不敢真誠面對你自己的內心。(yějiùshì shuō, nǐ gǎnbùgǎn zhēnchéng dì miànduì nǐ bǐxià de rénwù, gèng zhòngyào de shì, gǎnbùgǎn zhēnchéng miànduì nǐ zìjǐ de nèixīn.) 자신이 쓴 인물을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지, 나아가 자신의 내면을 속이지 않고 마주할 용기가 있는지가 관건이군요.
[패널]: 完全是這樣。 (wánquán shì zhèyàng.) 완벽히 그렇습니다.
[진행자]: 所以當一個作家…… (suǒyǐ dāng yígè zuòjiā……) 그래서 작가가...
[패널]: 把真實作為唯一的、最高的倫理之後,他扮演的角色也變了。他不再是那個指點江山的先知,或者高高在上的裁判。 (bǎ zhēnshí zuòwéi wéiyī de, zuìgāo de lúnlǐ zhīhòu, tā bànyǎn de juésè yě biàn le. tā búzàishì nàge zhǐdiǎn-jiāngshān de xiānzhī, huòzhě gāogāo zài shàng de cáipàn.) 진실을 유일하고 지고한 윤리로 삼는 순간, 작가의 역할도 바뀝니다. 세상을 호령하는 예언자나 고압적인 심판자가 아니게 되죠.
[패널]: 他的角色變成了一個“見證人”。對,一個見證人的責任是什麼?不是去評判誰對誰錯,也不是去預言未來會怎樣,而是盡可能呈現真實。 (tā de juésè biànchéng le yígè “jiànzhèngrén”. duì, yígè jiànzhèngrén de zérèn shì shénme? búshì qù píngpàn shéi duì shéi cuò, yě búshì qù yùyán wèilái huì zěnyàng, érshì jìn kěnéng chéngxiàn zhēnshí.) 대신 '증언자'가 됩니다. 증언자의 책무는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패널]:這是一種更謙卑、也更艱難的姿態。他不再去創造什麼烏托邦,也不再販賣廉價的希望,而是回到當下,回到每一個具體的生命。 (zhè shì yìzhǒng gèng qiānbēi, yě gèng jiānnán de zītài. tā búzài qù chuàngzào shénme wūtuōbāng, yě búzài fànmài liánjià de xīwàng, érshì huídào dāngxià, huídào měiyígè jùtǐ de shēngmìng.) 이는 훨씬 겸손하면서도 고된 작업입니다. 유토피아를 설계하거나 값싼 희망을 팔지 않고, 현재와 구체적인 개별 생명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패널]:所以高行健最後總結:文學的永恆價值就在於它對生者和當下的肯定。它不是為了某個虛幻的未來而犧牲現在,而是對每一個個體生命在此時此刻的確認。這才是文學作為歷史的補充而存在的真正理由。 (suǒyǐ gāo xíngjiàn zuìhòu zǒngjié: wénxué de yǒnghéng jiàzhí jiù zàiyú tā duì shēngzhě hé dāngxià de kěndìng. tā búshì wèile mǒugè xūhuàn de wèilái ér xīshēng xiànzài, érshì duì měiyígè gètǐ shēngmìng zài cǐshí-cǐkè de quèrèn. zhè cáishì wénxué zuòwéi lìshǐ de bǔchōng ér cúnzài de zhēnzhèng lǐyóu.) 그래서 가오싱젠은 문학의 영원한 가치는 '살아있는 자와 현재에 대한 긍정'에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허구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개별 생명의 실존을 확인하는 것. 이것이 문학이 역사의 보완재로서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6. 마무리: 알고리즘 시대의 진실한 표현]
[패널]: 好了,我們今天一起把高行健這篇演說梳理了一遍。從一開始“文學只能是個人的聲音”,到作家面臨“沈默”或“逃亡”的殘酷處境,再到寫作的根本理由是“為自己確認存在”,最終抵達了“冷的文學”這個核心,以及它所遵循的最高倫理——真實。 (hǎole, wǒmen jīntiān yìqǐ bǎ gāo xíngjiàn zhèpiān yánshuō shūlǐ le yíbiàn. cóng yì kāishǐ “wénxué zhǐnéng shì gèrén de shēngyīn”, dào zuòjiā miànlín “chénmò” huò “táowáng” de cánkù chǔjìng, zàidào xiězuò de gēnběn lǐyóu shì “wèi zìjǐ quèrèn cúnzài”, zuìzhōng dǐdá le “lěng de wénxué” zhège héxīn, yǐjí tā suǒ zūnxún de zuìgāo lúnlǐ —— zhēnshí.) 자, 오늘 가오싱젠의 연설을 쭉 훑어봤습니다. 문학은 개인의 목소리라는 전제부터 침묵과 도망이라는 가혹한 현실, 자기 존재 확인이라는 집필 동기, 그리고 '차가운 문학'과 그 윤리인 '진실'까지요.
[패널]: 整個邏輯鏈條非常清晰,而且是層層遞進的。它可以說是一步步為文學卸下了所有功利的、集體的包袱,讓它回歸到了一個最本源、最純粹的狀態:一個孤獨的個體為了確認自身的存在,用語言去見證和表述真實的努力。 (zhěnggè luójí liàntiáo fēicháng qīngxī, érqiě shì céngcéng dìjìn de. tā kěyǐ shuō shì yíbùbù wèi wénxué xièxià le suǒyǒu gōnglì de, jítǐ de bāofu, ràng tā huíguī dào le yígè zuì běnyuán, zuì chúncuì de zhuàngtài: yígè gūdú de gètǐ wèile quèrèn zìshēn de cúnzài, yòng yǔyán qù jiànzhèng hé biǎoshù zhēnshí de nǔlì.) 논리 구조가 아주 탄탄하네요. 문학에서 공리적이고 집단적인 짐을 하나씩 벗겨내어, 고독한 개인이 자신의 실존을 위해 언어로 진실을 증언하는 가장 순수한 상태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패널]: 這確實是一次徹底的回歸。 (zhè quèshí shì yícì chèdǐ de huíguī.) 참으로 철저한 회귀군요.
[패널]: 不過他這篇演說是 2000 年講的,20 多年過去了,這個世界變化太大了。是啊。 (búguò tā zhèpiān yánshuō shì èr líng líng líng nián jiǎng de, èrshíduō nián guòqù le, zhège shìjiè biànhuà tài dà le. shì a.) 하지만 이 연설이 20년 전의 것이잖아요. 그사이 세상은 너무나 변했습니다.
[패널]:在一個被社交媒體、算法推薦和商業排行榜深刻影響的時代,他所提倡的這種“冷的文學”、這種不求人知甚至有點“自甘寂寞”的寫作,還有生存的空間嗎?這是一個非常現實甚至有點殘酷的問題。 (zài yígè bèi shèjiāo méitǐ, suànfǎ tuījiàn hé shāngyè páihángbǎng shēnkè yǐngxiǎng de shídài, tā suǒ tíchàng de zhèzhǒng “lěng de wénxué”, zhèzhǒng bù qiú rénzhī shènzhì yǒudiǎnr “zìgān jìmò” de xiězuò, hái yǒu shēngcún de kōngjiān ma?zhè shì yígè fēicháng xiànshí shènzhì yǒudiǎnr cánkù de wèntí.) SNS, 알고리즘, 상업적 순위가 지배하는 시대에, 가오싱젠이 말한 '차가운 문학', 즉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하는 글쓰기가 살아남을 자리가 있을까요? 참 현실적이고도 아픈 질문입니다.
[패널]: 是啊,這個問題很尖銳。這也引出了這篇演說留給我們的最後一個思考:如果說文學的根本是“我表述故我在”…… (shì a, zhège wèntí hěn jiānruì. zhè yě yǐnchū le zhèpiān yánshuō liúgěi wǒmen de zuìhòu yígè sīkǎo:rúguǒ shuō wénxué de gēnběn shì “wǒ biǎoshù gù wǒ zài”……) 맞아요, 날카로운 질문이죠. 여기서 연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숙제가 나옵니다. 문학의 근본이 '아표수고재(내가 표현하므로 존재한다)'라면...
[패널]:那麼在今天這個每一個人都可以隨時隨地表述的時代,我們每一次在社交媒體上的發帖、每一次分享,究竟是在真正地確認自我,還是在不自覺地迎合某種看不見的潮流,去表演一個“被算法期待”的人設? (nàme zài jīntiān zhège měiyígè rén dōu kěyǐ suíshí-suídì biǎoshù de shídài, wǒmen měiyícì zài shèjiāo méitǐ shàng de fātiē, měiyícì fēnxiǎng, jiūjìng shì zài zhēnzhèng dì quèrèn zìwǒ, háishì zài bùzìjué dì yínghé mǒuzhǒng kànbújiàn de cháoliú, qù biǎoyǎn yígè “bèi suànfǎ qīdài” de rénshè?)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표현할 수 있는 오늘날, 우리가 SNS에 올리는 글과 공유하는 내용들은 정말 나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인가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흐름에 영합하여 '알고리즘이 기대하는 나'를 연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패널]: 這或許是高行健的演說留給我們每個人的問題。感謝您的收聽。 (zhè huòxǔ shì gāo xíngjiàn de yánshuō liúgěi wǒmen měigè rén de wèntí. gǎnxiè nín de shōutīng.) 이것이 가오싱젠의 연설이 우리 각자에게 남긴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주요 단어 및 사자성어
- 獲獎演說 (huòjiǎng yánshuō): 수상 연설. (노벨상 수상 소감의 공식 명칭)
- 代言人 (dàiyánrén): 대변인.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
- 劫難 (jiénàn): 재난, 겁난. (20세기 중국 문학이 겪은 정치적 박해를 상징)
- 自言自語 (zì yán zì yǔ): 혼잣말하다, 독백하다. (문학의 출발점으로 정의됨)
- 排遣 (páiqiǎn): (근심이나 외로움을) 달래다, 쫓아버리다.
- 慰藉 (wèijiè): 위로, 위안.
- 點睛之筆 (diǎnjīng zhī bǐ): 화룡점정. (연설이나 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부분)
- 至高無上 (zhìgāo wúshàng): 지고지순하다. 더할 나위 없이 높다.
- 指點江山 (zhǐdiǎn jiāngshān): 강산을 지적하다. (정세를 논하거나 천하를 호령함을 비유)
- 自甘寂寞 (zì gān jìmò):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하다.
2. 핵심 사상 및 용어
- 冷的文學 (lěng de wénxué): 차가운 문학. 가오싱젠 문학관의 핵심. 정치, 상업, 대중적 열기(熱)에서 벗어나 오직 작가 개인의 실존과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
- 我表述故我在 (wǒ biǎoshù gù wǒ zài): 나는 진술(표현)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명언을 작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 글쓰기가 곧 존재의 증명임을 뜻함.
- 見證人 (jiànzhèngrén): 증언자. 작가는 가르치는 '선지자'나 판결하는 '재판관'이 아니라, 인간의 진실한 처지를 목격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
- 精神奢侈品 (jīngshén shēchǐpǐn): 정신적 사치품. 물질적 욕구가 충족된 후 누리는 순수하고 비공리적인 정신 활동으로서의 문학.
3. 주요 문형 및 어법 포인트
① 除了... 便是... (chúle... biànshì...)
- 의미: "...을 제외하면 바로 ...이다."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음을 강조)
- 원고 내 예시: 除了沈默,便是逃亡。 (침묵이 아니라면 바로 망명뿐이다.)
② 恰恰 (qiàqià)
- 의미: "정확히", "공교롭게도", "마침". (강조의 부사)
- 원고 내 예시: 恰恰是這種個人的聲音倒更為真實。 (바로 이러한 개인의 목소리야말로 훨씬 진실하다.)
③ 哪怕 (nǎpà) ... 也 (yě) ...
- 의미: "설령 ~일지라도", "비록 ~하더라도". (가정 양보)
- 원고 내 예시: 哪怕只是個體的存在... (설령 그것이 개체로서의 존재일 뿐일지라도...)
④ 究竟 (jiūjìng)
- 의미: "도대체", "결국". (의문문에서 강조하거나 최종 결론을 낼 때 사용)
- 원고 내 예시: 究竟是在真正地確認自我... (도대체 진정으로 자아를 확인하는 것인가...)
20세기 전체주의의 광풍을 겪어낸 지식인이 **'개인이 어떻게 침묵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영산』을 세밀한 4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분석해 드립니다.
1. 문학적 시점의 전환: '나(我)'에서 '그(他)'로
가오싱젠의 작품(특히 『영산』)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인칭의 변주입니다. 연설에서도 그는 '개인의 소리'를 강조하는데, 이는 문학적 기법과도 연결됩니다.
- 인칭의 분열과 통합: 그는 작가가 자신을 관찰할 때 **'나(I)', '너(You)', '그(He)'**로 나누어 부르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 이유: 주관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고통받는 자신을 객관화된 타자로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차가움(冷)'의 실천적 방법론입니다. 뜨거운 고통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2. '차가운 문학'의 사회적 기능: '비정치적'이 가장 '정치적'인 이유
가오싱젠은 정치를 거부한다고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문학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갖게 됩니다.
- 탈정치(Depoliticization): 작가가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순간, 그는 특정 집단의 대변인이 됩니다. 가오싱젠은 이를 **'정신적 예속'**이라고 보았습니다.
- 개인성의 수호: 국가가 개인을 부품으로 취급할 때, 문학이 "나는 오직 나로서 존재한다"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체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 됩니다.
- 자유의 정의: 그에게 자유는 '무엇을 할 자유'가 아니라, **'동원되지 않을 자유'**에 가깝습니다.
3. 문학의 진실: '내면적 진실' vs '역사적 기록'
연설문에서 그는 역사가 기록하지 못하는 지점을 문학이 채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구분 | 역사 (History) | 차가운 문학 (Cold Literature) |
| 관점 | 거시적, 집단적, 승자 중심 | 미시적, 개인적, 생존자 중심 |
| 속성 | 외부적 사실의 나열 | 내면적 감각과 고통의 증언 |
| 목적 | 교훈 및 정통성 확립 | 존재의 확인 및 정신적 자구 |
| 특징 | 종종 권력에 의해 가공됨 | 작가의 진정성에 근거함 (불가침) |
4. 실천적 문구 및 어법 심화 정리
원고에서 사용된 고난도 어휘와 문장을 더 상세히 뜯어보겠습니다.
- 「書寫其實便已得到肯定」 (shūxiě qíshí biàn yǐ dédào kěndìng)
- 문형: A 其實便已 B (A하는 것은 사실상 이미 B한 것이다)
- 의미: 결과(출판, 명성)보다 과정(쓰는 행위)에 본질적 가치가 있음을 선언하는 문구입니다. 팟캐스트에서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주제로 변형해 쓰기 좋습니다.
- 「自言自語」 (zì yán zì yǔ)
- 단순히 '혼잣말'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의 진실한 사유를 뜻하는 철학적 용어로 이해해야 합니다.
- 「精神自留地」 (jīngshén zìliúdì)
- 어원: '자류지(自留地)'는 과거 중국 사회주의 체제에서 농민이 개인적으로 경작하도록 허용된 작은 땅을 의미합니다.
- 비유: 모든 것이 국가 소유인 세상에서 유일하게 개인의 자유가 허락된 정신적 공간을 뜻하는 절묘한 비유입니다.
💡 팟캐스트 진행을 위한 추가 아이디어
진행자로서 청취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호응을 이끌어가는 건 어떨까요?
"가오싱젠은 '침묵'이 정신적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말(SNS) 속에서 살고 있죠. 어쩌면 현대인에게 '차가운 문학'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를 멈추고, 오직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회복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