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

Charles Allen LeBlanc & Jill Denise Perrey

EyesWideShut 2025. 12. 5. 12:14

 

 

찰리 르블랑 인터뷰

요약 (Executive Summary)

 

예배 인도자 찰리 르블랑(Charlie LeBlanc)과의 인터뷰를 종합하여 인테그리티 뮤직(Integrity Music)과 호산나! 뮤직(Hosanna! Music) 시리즈 초창기의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르블랑은 인테그리티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중 4번째 앨범인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To Him Who Sits on the Throne)'와 이후 '만유의 주(Lord of All)' 앨범을 통해 초기 워십 음악계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인터뷰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테그리티 뮤직의 초기 제작 방식은 예배 인도자를 내세우기보다 찬양곡 자체를 전파하는 데 초점을 맞춘 '노래 수집가(song gatherer)' 모델이었다. 둘째, 프로듀서 톰 브룩스(Tom Brooks)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으며, 그의 뛰어난 편곡과 오케스트레이션은 카리스마틱 워십이 교단 교회에 수용되는 데 결정적인 다리 역할을 했다. 셋째, 르블랑의 앨범 제작 과정은 자유로운 성령의 임재를 중시하는 그의 예배 철학과 사전에 모든 것이 기획된 스튜디오 녹음 방식 사이의 긴장감을 드러낸다. 특히 아내 질(Jill)의 앨범 참여 배제와 영국 버전 앨범의 별도 제작 등 개인적인 어려움도 상세히 기술되었다. 마지막으로, 르블랑은 수십 년간의 사역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워십 산업'이 직면한 모방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개인적 비극을 통해 체득한 '진정성(authenticity)'이 예배의 핵심 가치임을 역설한다.

 

1. 인테그리티 뮤직과 호산나! 시리즈의 초기 역사

인터뷰에 따르면 찰리 르블랑은 인테그리티 뮤직의 호산나! 시리즈 초기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의 활동은 1980년대 세인트루이스(St. Louis)의 부흥하던 예배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다.

  • 세인트루이스 예배 공동체: 르블랑은 론 터커(Ron Tucker) 목사가 이끌던 'Grace World Outreach Center' 교회의 일원이었다. 이 공동체는 켄트 헨리(Kent Henry), 칼 알브레히트(Carl Albrecht), 톰 브룩스 등 초기 호산나! 뮤직의 주역들이 활동하던 중심지였다.
  • 초기 호산나! 시리즈: 르블랑이 참여한 앨범 To Him Who Sits on the Throne (1986)은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었다. 이전 앨범들은 다음과 같다.
    1. Behold His Majesty: 론 터커의 교회에서 제작된 프로젝트로, 시리즈의 파일럿 역할을 했다.
    2. Let God Arise: 존 셀러스(John Sellers)의 마스터 음원을 구매하여 발매한 앨범.
    3. All Hail King Jesus: 켄트 헨리가 인도했으며, 인테그리티가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제작한 첫 공식 앨범.
  • 초기 전략: 인테그리티 뮤직은 초기에는 특정 예배 인도자나 아티스트를 홍보하기보다, 교회들 사이에 구전되던 좋은 찬양들을 수집하여 고품질로 녹음하고 보급하는 '노래 수집가'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초기 앨범 커버에는 예배 인도자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다. 이는 "사람을 높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과 복음, 그리고 예배의 순간을 전파하려는" 의도였다.

2. 앨범 제작 과정: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 '만유의 주'

르블랑은 자신이 참여한 두 호산나! 앨범의 제작 과정에 대해 상반된 경험을 상세히 설명했다.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To Him Who Sits on the Throne, 1986)

  • 제작 방식: 이 앨범은 100% 스튜디오 녹음 프로젝트였다. 르블랑은 "라이브 녹음의 느낌을 주기 위해 군중 소음이나 박수를 추가"하는 당시의 제작 기법을 언급했다.
  • 제한적인 참여: 르블랑은 톰 브룩스로부터 단순히 트랙에 노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스튜디오에 갔다. 그는 당시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그림이나 인테그리티 뮤직의 비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며, "예배를 인도하는 것처럼 연기하며 노래하라"는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회상했다.
  • 분리된 녹음: 그가 보컬 녹음을 마친 후, 리앤 알브레히트(Leanne Albrecht)가 별도로 스튜디오에 와서 다른 리드 보컬 부분을 녹음했다. 앨범 발매 초기에는 그의 이름이 '예배 인도자'로 크레딧에 오르지도 않았다.

 

 

 

 

 

 

만유의 주 (Lord of All, 1988)

  • 심화된 참여와 갈등: 이 앨범에서 르블랑은 더 깊이 관여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 아내 질(Jill)의 배제: 당초 부부가 함께 앨범을 제작하기로 했으나, 녹음 직전 인테그리티 측(앨라배마 모빌의 Covenant Church)에서 "여성 예배 인도자와 공동으로 리드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 논의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내 질의 참여를 반대했다. 이 일로 질은 큰 상처를 받았다.
    • 정해진 곡 목록: 르블랑은 자신이 준비한 곡들을 선보였으나, 인테그리티는 이미 대부분의 곡을 선정해 둔 상태였다. 그의 자작곡 중 "God is My Refuge"와 "Clap Your Hands" 두 곡만이 앨범에 포함되었다.
  • '라이브' 녹음 방식: 이 앨범은 라이프 크리스천 센터(Life Christian Center)에서 회중과 함께 녹음되었으나, 실제로는 사전에 녹음된 MR 트랙에 맞춰 노래하는 '가짜 라이브(singing to the tracks)' 방식이었다.
    • 돈 모엔(Don Moen)이 오프닝 무대를 열었고, 이후 르블랑과 질(이날은 함께 무대에 섬)이 MR에 맞춰 예배를 인도했다.
    • 톰 브룩스는 회중의 반응과 예언 같은 돌발 상황을 모두 담기 위해 2개의 멀티트랙 테이프 기기를 동시에 운영했다.
  • 후반 작업 및 영국 버전:
    • 르블랑은 라이브 녹음 후 스튜디오에서 앨범 전체를 다시 불렀고, 톰 브룩스는 라이브 버전과 스튜디오 버전을 섞어 최종 앨범을 완성했다.
    • 르블랑은 1년 후 영국 사역을 준비하던 중, 유럽 시장을 위해 동일한 MR 트랙에 영국 예배 인도자 크리스 보워터(Chris Bowater)가 보컬을 녹음한 별도의 '만유의 주' 앨범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사전에 전혀 통보받지 못했다.

3. 톰 브룩스의 역할과 제작 방식

르블랑은 프로듀서 톰 브룩스를 "총명한 프로듀서(brilliant producer)"라고 칭하며 그의 음악적 재능과 비전을 높이 평가했다.

  • 오케스트레이션의 대가: 톰 브룩스는 피아노도 없이 호텔 레스토랑 구석에서 머릿속으로 다음 호산나! 앨범의 모든 오케스트레이션을 악보로 그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 교단의 벽을 넘는 사운드: 그는 카리스마틱 예배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도입함으로써, 전통적인 교단 교회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이는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새로운 예배 스타일을 수용하도록 만드는 현명한 전략이었다.
  • 결정적 버전의 창조: 1970~80년대에는 좋은 곡들이 전문적인 녹음 없이 컨퍼런스 테이프 등을 통해 구전되는 경우가 많았다. 톰 브룩스의 고품질 녹음은 이러한 곡들의 '결정적인(definitive)' 버전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4. 워십 철학: 진정성과 모방의 위험

르블랑은 수십 년간의 사역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 예배의 위험성과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공유했다.

  • 자유로운 예배와 구조화된 녹음: 그는 켄트 헨리와 함께했던 "성령이 이끄시면 10분이라도 한 코러스를 반복하던" 자유로운 예배를 그리워하며, 정해진 트랙에 맞춰 노래해야 했던 녹음 과정은 "상자 안에 갇힌(boxed-in)"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 '워십 산업'의 위험: 그는 인테그리티, 힐송(Hillsong), 매버릭 시티(Maverick City) 등 특정 스타일을 하나님과의 친밀감 없이 그저 모방하려는 경향을 가장 큰 위험으로 꼽았다. 이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예배 인도자를 위한 조언:

5. 개인적 비극이 워십에 미친 영향

르블랑은 예배에서의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설명했다.

  • 아들의 죽음: 13년 전, 그의 23세 아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그의 신앙과 사역 전체를 뒤흔들었다.
  • 노래할 수 없었던 노래들: 비극 이후, 그는 "믿음으로 산을 옮기라"거나 "전사처럼 싸우라"는 식의 강한 믿음을 선포하는 노래들을 더 이상 부를 수 없었다. 그것은 당시 그의 마음 상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대해 진실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진정성 있는 예배로의 복귀: 그는 사역에 복귀하면서 자신의 예배 목록을 재구성해야 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평안, 위로에 관한 노래들, 즉 자신이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 내용의 찬양들만을 선택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예배에서 자신의 감정과 영적 상태에 정직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6. 인테그리티 뮤직의 유산과 영향

르블랑은 인테그리티 뮤직이 남긴 긍정적인 유산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 위대한 찬양의 보급: 가장 큰 유산은 "교회가 함께 부를 수 있는 최고의 노래들을 찾아내어 전 세계에 보급한 것"이다.
  • 교단 간의 다리 역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활용한 신선한 사운드는 찬송가에 익숙했던 교단 교회들이 현대적인 예배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교량 역할을 했다.
  • 친밀감으로의 초대: 궁극적으로 인테그리티 뮤직의 앨범들은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친밀함으로 나아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알게 하며,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예배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 지속적인 영향력: 그가 참여한 앨범 수록곡 중 "Celebrate Jesus", "Here in Your Presence", 그리고 자작곡 "God is My Refuge" 등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Charles Allen LeBlanc was born in New Orleans, Louisiana on December 4, 1954 into a good Cajun family, the fifth of six children. He grew up in Baton Rouge until his father’s job was transferred to Columbia, Missouri in 1967. One year later they made the move to St. Louis, Missouri where he has lived most of his adult life. 

Raised in a strong Catholic family, his commitment to Mass and all church functions were abundant, even serving as an Altar Boy during his younger years. However during his teen years as he watched his “model family” begin to slowly fall apart, exacerbated by a debilitating accident which left his mother paralyzed from the waist down, Charlie began to wonder about the real existence of God and the reason he was alive.

One day he asked the ultimate question: “God, if You’re really real, prove Yourself to me.” The Lord was just waiting for an invitation, and promptly began working in Charlie’s heart. Just before his 20th birthday in December 1974, Charlie gave his entire life to Jesus, and was born again into a genuine relationship with the “real” and Living God. This began a cascade of events, which eventually drew all of his family members to become true Christians as well.

 

Jill Denise Perrey was born in Lebanon, Missouri on October 28, 1957. The youngest of three children, she was raised in a Christian home attending the local Disciples of Christ Church. Jill’s father took employment in St. Louis in 1967 and moved the family from the small town of 8,200 to the large metropolis of over a million people.

During the Jesus Movement of the 1970s, Jill attended her first Charismatic prayer meeting on November 7, 1971. This was a life-changing event for her.

Although raised in church and a true Believer at heart, she began to experience a brand new vibrant relationship with Jesus like she never had before. She was then baptized in the Holy Spirit January 9, 1972, which was the beginning of a whole new life for her. Jill is the first to admit, however, she wasn’t “the perfect Christian” by any means and did a lot of stupid things. But by God’s infinite grace and kindness, although only 14 years old, she never strayed and lived in close fellowship with the Lord through the rest of her teen years to this day.

How They Met

New Covenant Fellowship was the largest Charismatic church in the St. Louis area during the ’70s. Both Charlie and Jill began to attend there near the same time – during the Fall of 1974. They eventually met and became friends, both being musicians, and had many common friends who were also involved in music. Charlie had come out of a heavy English-rocker background (Cream, Eric Clapton, etc), and Jill’s musical influences at the time were the likes of Cat Stevens and James Taylor, yet the Lord was able to take these opposite musical backgrounds and eventually work them together for His purposes! 

Charlie & Jill became very close friends, along with one other friend from church, Larry Mintz, who was also instrumental in getting Charlie saved. They were a three-some who always hung out together, and eventually all played together in the worship band at church. From the time Charlie & Jill met, Jill always felt something very special in her heart for him (possibly even that he was “the one” :), although she tried to keep it hidden away to preserve their friendship. All along though, Charlie liked Jill as a close friend but didn’t consider anything more. Larry, Charlie & Jill continued to hang out often, but eventually it became obvious the Lord was stirring something in their hearts. For two years they dated on and off, but in September of 1977 Charlie proposed and they were married March 11, 1978 in St. Louis.

The Rest of the Story

Soon, the call to attend Bible College in Tulsa rang loudly in their hearts. So in August of ’79 they loaded up their belongings, moved to Tulsa, Oklahoma and attended one year of Bible College. During the school year, Charlie & Jill led the praise & worship every Sunday at a local church located at the Osborn Foundation, founded by Evangelist T.L. Osborn. This was their first “solo” assignment leading worship. Up until this time, they either assisted or co-led with other worship leaders in St. Louis at Grace Christian Center with their mentor, Pastor Ron Tucker.

Two weeks after graduating in June 1980, Jill gave birth to their first child, a beautiful daughter named Camille.

Shortly after her birth, they again packed up everything and moved to Phoenix, Arizona to pursue Charlie’s first staff position at Faith Chapel Foursquare Church in Glendale. It was a small operation, and Charlie filled every position from Worship Leader, Project Director (which included jump-starting random idle projects around the building), Youth Leader, and everything in between. Not long after, they learned again they would be blessed with another child. And in November 1981, their darling daughter Cherrie was born.

In June of 1981, Charlie left the staff position at Faith Chapel, and together with Jill they started Joyful Word Ministries, to fulfill their calling of bringing God’s Word in song to the world. This included not only traveling to churches around the nation, but they also hosted a weekly “Praise & Teaching” meeting in Phoenix, where dozens would come to worship and be nourished in God’s Word.

In 1983 the LeBlancs received an offer from Pastor Rick Shelton at Life Christian Center in St. Louis to once again come on staff to lead the worship, direct the worship team, and serve as one of the pastors on staff. So they loaded up once more and moved back to Missouri, which is where their precious son Beau Charles was born in May of 1985.

They were a very close family growing up, as they all traveled together (most of the time) while Mom & Dad ministered across the nation and around the world.


👨‍👩‍👧‍👦 찰스 & 질 르블랑 부부의 이야기

1. 찰스 앨런 르블랑 (Charles Allen LeBlanc)

  • 출생 및 배경: 1954년 12월 4일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좋은 케이준(Cajun) 가정의 여섯 자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 성장: 배턴루지에서 성장하다가 1967년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미주리주 컬럼비아로 이주했습니다. 1년 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로 다시 이사했으며, 성인 생활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 초기 신앙: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 어린 시절 복사(Altar Boy)를 지내는 등 교회 활동에 헌신적이었습니다.
  • 신앙적 위기: 십대 시절, '모범적인 가족'이 어머니가 하반신이 마비되는 심각한 사고를 겪으면서 서서히 무너지자, 하나님과 삶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 회심: "하나님, 당신이 정말 계시다면, 스스로 증명해 보세요"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던졌고, 1974년 20번째 생일 직전에 예수님께 삶 전체를 바치고 거듭났습니다. 이후 가족 구성원 모두가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음악 배경: 하드 록(Cream, Eric Clapton 등) 배경에서 성장했습니다.

2. 질 데니스 페리 (Jill Denise Perrey)

  • 출생 및 배경: 1957년 10월 28일 미주리주 레바논에서 세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 성장: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Disciples of Christ Church)에 다니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1967년 아버지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일자리를 얻으면서 인구 8,200명의 작은 마을에서 백만 명 이상의 대도시로 이사했습니다.
  • 신앙 여정: 1970년대 '예수 운동(Jesus Movement)' 기간 중이던 1971년 11월 7일, 첫 번째 은사주의 기도 모임(Charismatic prayer meeting)에 참석하면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 영적 체험: 교회에서 성장하고 마음은 진정한 신자였지만, 이 사건을 통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생기 넘치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경험했습니다. 1972년 1월 9일 성령 세례(Baptized in the Holy Spirit)를 받았으며,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 성장기: 질 본인은 자신이 완벽한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며 어리석은 짓도 많이 했다고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친절로 14세의 어린 나이에도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청소년기를 보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음악 배경: 당시 캣 스티븐스(Cat Stevens),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같은 포크 음악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 만남과 결혼 (How They Met)

  • 만남: 1970년대 세인트루이스 지역에서 가장 큰 은사주의 교회였던 **뉴 커버넌트 펠로우십(New Covenant Fellowship)**에 두 사람 모두 1974년 가을 비슷한 시기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 관계 발전: 둘 다 음악가였고 음악 관련 공통 친구들이 많아 친구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정반대인 음악적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을 결국 그분의 목적에 맞게 합쳐주셨습니다.
  • 구원자 친구: 찰스가 구원받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래리 민츠(Larry Mintz)를 포함해 세 사람은 늘 함께 어울리는 친구였으며, 나중에는 교회 찬양팀에서 함께 연주했습니다.
  • 로맨스: 질은 찰스를 만난 순간부터 그에 대해 매우 특별한 감정(어쩌면 '운명의 상대')을 느꼈지만, 우정을 지키기 위해 감추려 노력했습니다. 반면 찰스는 질을 친한 친구로만 여겼을 뿐,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결혼: 시간이 지나 주님께서 두 사람의 마음에 무언가를 일으키고 계심이 분명해졌습니다. 2년간의 교제 끝에 1977년 9월 찰스가 청혼했고, 1978년 3월 11일 세인트루이스에서 결혼했습니다.

📖 그 후의 이야기 (The Rest of the Story)

  • 신학교: 결혼 후 털사(Tulsa)의 성경 대학에 가라는 부르심에 따라 1979년 8월 오클라호마주 털사로 이주하여 1년간 재학했습니다.
  • 첫 사역: 재학 중 전도자 T.L. 오스본이 설립한 오스본 재단(Osborn Foundation) 내 지역 교회에서 매주 일요일 찬양 인도를 맡았는데, 이것이 그들의 첫 '단독' 찬양 사역이었습니다.
  • 자녀 출산: 1980년 6월 성경 대학 졸업 2주 후, 첫째 딸 **카미유(Camille)**를 낳았습니다.
  • 애리조나 사역: 곧 애리조나주 피닉스로 이주하여 글렌데일의 **페이스 채플 포스퀘어 교회(Faith Chapel Foursquare Church)**에 찰스가 첫 전임 사역자로 부임했습니다. 찰스는 찬양 인도자, 프로젝트 책임자, 청소년 리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둘째 출산: 1981년 11월, 둘째 딸 **쉐리(Cherrie)**가 태어났습니다.
  • 조이풀 워드 사역: 1981년 6월 찰스는 교회 직원직을 떠나, 노래로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라는 소명을 이루기 위해 질과 함께 **조이풀 워드 미니스트리즈(Joyful Word Ministries)**를 시작했습니다. 전국 교회 순회 사역뿐 아니라, 피닉스에서 주간 '찬양 및 교육' 모임을 열기도 했습니다.
  • 세인트루이스 복귀: 1983년 라이프 크리스천 센터(Life Christian Center)의 릭 셸턴(Rick Shelton) 목사로부터 찬양 인도와 팀 디렉팅, 그리고 목회 스태프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다시 미주리로 이주했습니다.
  • 셋째 출산: 1985년 5월, 셋째 아들 **보 찰스(Beau Charles)**가 태어났습니다.
  • 가족: 부부가 국내외로 사역하는 동안 아이들 모두 부모님과 함께(대부분의 경우) 여행하며 매우 가까운 가족으로 성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