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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그리티 뮤직의 기원과 영향력: 마이크 콜먼(Mike Coleman)

EyesWideShut 2025. 12. 2. 17:24

 

 

 

인테그리티 뮤직의 기원과 영향력: 마이크 콜먼

요약

본 브리핑 문서는 인테그리티 뮤직(Integrity Music)의 공동 창립자이자 전 CEO인 마이크 콜먼(Mike Coleman)과의 심층 인터뷰를 종합하여 핵심 통찰을 제공한다. 이 문서는 인테그리티 뮤직 이전의 분열된 예배 음악 환경,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돕는다"는 명확한 사명을 바탕으로 한 회사의 설립 과정, 그리고 기독교 음악 산업을 재편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상세히 다룬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테그리티 뮤직은 구독 기반의 '연속성 클럽(Continuity Club)'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음악을 배포했으며, 이는 당시 업계의 표준이었던 '아티스트-라디오-소매점' 모델에서 벗어난 선구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콜먼의 개인적인 영적 여정, 특히 아브라함의 언약에 기반한 기도는 회사의 핵심 사명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회사는 'All Hail King Jesus', 'Give Thanks', 'Shout to the Lord'와 같은 중요한 앨범들을 통해 전 세계 교회의 예배 음악을 표준화하고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또한 힐송(Hillsong)과의 파트너십, 타임 라이프(Time Life)와의 협력을 통한 'Songs for Worship' 캠페인 등은 인테그리티의 영향력을 대중 시장으로 확장시킨 중요한 이정표였다. 문서는 회사가 직면했던 재정적, 영적 도전 과제들과 함께, 토착화된 예배(Indigenous Worship)를 육성하려는 콜먼의 현재 사역 비전으로 마무리된다.

 

I. 인테그리티 뮤직 이전의 예배 음악 환경

마이크 콜먼에 따르면, 인테그리티 뮤직이 설립되기 전 예배 음악계는 오늘날과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환경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 분열과 비표준화: 예배 음악은 지역 교회나 특정 콘퍼런스를 중심으로 '주머니(pockets)'처럼 흩어져 있었다. 이로 인해 같은 곡이라도 교회마다 멜로디나 가사가 다르게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I Exalt Thee'와 같은 곡이 한 교회와 다른 교회에서 다르게 불리는 문제가 있었다.
  • 품질의 불균일성: 일부 선구적인 사역(예: Scripture in Song, Maranatha! Music)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녹음 품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는 예배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 장벽으로 작용했다. 당시의 녹음은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에게는 감동을 주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악하게 들리는 문제가 있었다.
  • 자료의 부족: 악보나 표준화된 녹음 자료가 널리 보급되지 않아 새로운 찬양을 배우고 전파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많은 곡들이 '작자 미상(author unknown)'으로 유통되었고, 인테그리티는 원작자를 찾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콘퍼런스 중심의 보급: 새로운 찬양은 주로 콘퍼런스나 집회를 통해 배우고 전파되었다. 참석자들은 현장에서 배운 곡의 녹음본을 구하고자 했으나, 고품질의 자료를 얻기는 어려웠다.

II. 인테그리티 뮤직의 탄생

인테그리티 뮤직의 설립은 마이크 콜먼의 개인적 영적 여정과 '뉴 와인(New Wine)' 매거진이라는 전략적 기반이 결합된 결과였다.

A. 마이크 콜먼의 개인적 여정

  • 음악적 배경: 콜먼은 드러머로서 재즈 밴드, 심포닉 밴드 등에서 활동했으며, 15세 때 로저 브릴랜드(Roger Breeland)가 결성한 그룹 '트루스(Truth)'의 전신인 'The Varsity Singers'에서 연주하며 기독교 음악 사역을 경험했다.
  • 영적 갈급함과 언약 기도: 사역 중 극심한 영적 메마름을 경험한 콜먼은 아브라함 언약(갈라디아서 3:29)을 묵상하며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께 "나를 축복하사 복이 되게 하소서(Bless me and make me a blessing)"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입에 두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창조적인 역사를 이루어달라고 간구했다.
  • 사명의 탄생: 이 기도 이후, 동료인 에드 린드퀴스트(Ed Lindquist)와 대화하던 중 콜먼은 무심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이끌지 못하는 음악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말은 훗날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백한 임재(Manifest presence of God)를 경험하도록 돕는다"**는 인테그리티 뮤직의 공식적인 사명 선언문이 되었다.

B. '뉴 와인' 매거진과 호산나! 뮤직의 시작

  • '뉴 와인' 매거진: 콜먼이 이끌던 '뉴 와인'은 100개국에 55,0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성경 교육 잡지였다. 이는 인테그리티 뮤직의 초기 고객 기반이 되었다.
  • 에드 린드퀴스트와 돈 모엔: 콜먼은 마케팅 전문가인 에드 린드퀴스트와 협력하여 잡지 독자들의 필요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독자들은 기도, 영적 전쟁 등과 함께 '예배'에 대한 갈증이 가장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시기에 콜먼은 테리 로(Terry Law)의 집회에서 예배 인도를 시작한 돈 모엔(Don Moen)을 만났다.
  • 호산나! 뮤직의 출범: 독자들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콜먼과 린드퀴스트는 '뉴 와인'의 구독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예배 음악을 격월로 발송하는 연속성 클럽(Continuity Club), 즉 '호산나! 뮤직(Hosanna! Music)'을 1985년 7월 10일에 시작했다.

III.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철학

인테그리티 뮤직은 기존 기독교 음악 산업의 관행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모델을 개척했다.

  • 연속성 클럽 (The Continuity Club):
    • 새로운 예배 앨범(초기에는 카세트테이프)을 격월로 구독자에게 직접 우편 발송하는 방식이었다.
    • 당시 기독교 음악 회사는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이는 혁명적인 모델이었다.
    • 초기 4,000명의 가입자를 예상했으나, 즉시 8,000명이 가입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 기존 산업 모델과의 차이:
    • 당시 기독교 음악 산업은 아티스트 계약 → 기독교 라디오 홍보 → 기독교 서점 판매라는 3각 모델에 의존했다.
    • 인테그리티는 아티스트가 아닌 '예배 인도자'를 발굴하고, '교회'를 라디오 방송국처럼 활용했으며,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유통하는 완전히 다른 생태계를 구축했다.
  • 핵심 철학:
    • "Integrity"의 의미: 이름 '인테그리티'는 라틴어 '정수(Integer)'에서 파생된 단어로, '온전함(Wholeness)'을 의미한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온전하고 완전하게 된다는 신학적 비전을 담고 있다.
    • 임재 우선주의 (Presence over Performance): 모든 제작 과정에서 최우선 기준은 '이것이 사람들을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가, 아니면 예배 경험을 향상시키는가?'였다. 퍼포먼스나 제작 기술이 예배의 본질인 '임재'를 압도하지 않도록 경계했다.

IV. 주요 프로젝트 및 성장 이정표

인테그리티 뮤직은 수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예배 음악의 지형을 바꾸었다.

  • 초기 호산나! 뮤직 음반:
    • 처음에는 기존 앨범을 라이선스하여 배포했다 (Let Praise AriseBehold His Majesty).
    • 1985년 11월에 발송할 세 번째 앨범을 찾지 못하는 위기에 직면하자, 8주 만에 직접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켄트 헨리(Kent Henry)가 인도한 **'All Hail King Jesus'**로, 인테그리티가 직접 제작한 첫 공식 앨범이 되었다.
  • 주요 성장 동력 프로젝트:
    • Scripture Memory Songs: 성경 구절을 가사로 한 노래 시리즈.
    • The Donut Man (롭 에반스): 어린이 사역 비디오 및 음악 프로젝트.
    • God With Us (돈 모엔): 전통적인 교회에 다가간 뮤지컬 프로젝트.
    • The Celebration Hymnal (1997): 2백만 부 이상 판매된 초교파 찬송가집으로, 인테그리티의 곡들을 다음 세대를 위해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
    • 힐송(Hillsong)과의 파트너십: 돈 모엔이 발굴한 힐송과 협력하여 달린 첵(Darlene Zschech)이 인도한 'Shout to the Lord' 앨범을 출시, 전 세계적으로 1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이 파트너십은 14년간 지속되었다.
    • Songs for Worship (2000): 타임 라이프(Time Life)와 협력하여 세속 TV 채널에 광고를 집행한 프로젝트. 마라나타, 빈야드 등 다른 레이블의 곡까지 포함하여 1년 만에 1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모았고, 총 2,600만 장의 CD를 판매했다.

V. 글로벌 비전과 확장

콜먼은 처음부터 전 세계 교회를 섬기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 국제적 확장: 1987-88년에 영국과 호주에서 연속성 클럽을 시작했으며, 이후 싱가포르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지사를 설립했다. 인테그리티의 음악은 166개국 이상에 배포되었다.
  • 국제적 앨범 제작: Shalom Jerusalem(예루살렘), Rejoice Africa(남아프리카), 브라질 등 전 세계 여러 곳에서 현지 예배를 녹음하여 앨범을 제작했다.
  • Worship International (비영리 사역):
    • 1988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전 세계 예배 인도자 및 송라이터들을 훈련하고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 'Integrity Worship Institute'를 통해 아르메니아, 러시아, 대만, 브라질 등지에서 수백 명의 예배 사역자들을 교육했다.
    • 현재 이 단체는 **International Bridges of Worship (IBOW)**로 개명하여, 콜먼이 이끌며 이란 기독교인들을 위한 토착 예배 개발 등 전략적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VI. 핵심 인물과 그들의 기여

콜먼은 인테그리티 뮤직의 성공이 수많은 헌신적인 인물들의 기여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언급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이름 주요 기여 및 평가
Don Moen 놀라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예배 인도자, 송라이터. 선구자적 인물.
Ed Lindquist 뛰어난 마케터, 탁월함을 추구하며 인테그리티에 크게 기여.
Tom Brooks 뛰어난 편곡가, 음악가, 지휘자, 프로듀서. 목표 달성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신실한 인물.
Kent Henry 예언적이고, 열정적이며, 날카로운 예배 인도자이자 송라이터.
Darlene Zschech 여성 예배 인도의 진정한 선구자. 명성에 흔들리지 않고 경건함을 유지한 모델.
Paul Baloche 챔피언 같은 사람. 놀라운 송라이터이며,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님.
Ron Kenoly 흑인 교회와 백인 교회를 아우르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 매우 기름부음 받은 예배 인도자.
Paul Wilbur 메시아닉 워십 음악을 개척하고 전 세계에 전파한 예언적 인물.

VII. 도전과 해결 과제

인테그리티 뮤직은 성장 과정에서 여러 도전에 직면했다.

  • 산업의 변두리: 앨라배마 주 모빌(Mobile)에 위치하여 내슈빌 중심의 기독교 음악계와 거리를 둔 것은 독창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도전이었다.
  • 재정적 위기: 급격한 성장으로 현금 흐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은행 대출이 막히자, "연간 구독료 선결제 시 무료 앨범 추가 제공"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필요한 현금을 확보했다. 이는 고객들의 깊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 인적 문제: 한 예배 인도자의 도덕적 문제로 인해 6만 달러 이상을 투자해 제작이 완료된 앨범의 출시를 취소하고 손실을 감수한 사례가 있었다. 이는 '인테그리티'라는 이름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VIII. 유산과 미래를 위한 교훈

A. 예배 사역자들을 위한 조언

  1.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말라: 다윗이 사울의 갑옷을 입지 않았듯,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독창성과 창의성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2. 사역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라: 모든 사역은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면 기쁨을 얻지만, 사역 자체를 섬기기 시작하면 그것이 폭군이 될 것이다.
  3. '음악'과 '소리'의 차이를 이해하라: "우리는 음악을 만들 수 있지만, 소리(the sound)는 하나님이 만드신다." 음악적 기술을 넘어 하나님의 임재가 담긴 '소리'를 추구해야 한다.

B. 콜먼의 현재 사역과 비전

콜먼은 현재 **IBOW (International Bridges of Worship)**를 통해 토착 예배(Indigenous Worship)를 육성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그는 비영어권 예배에서 여전히 90%가 영어권에서 작곡된 서구 스타일의 노래를 번역해 부르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 모델을 뒤집고자 한다. 그의 목표는 각 민족이 자신의 심장 언어(heart language)와 고유한 음악 스타일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는 "예배는 선교의 연료"라고 믿으며, 이 사역이 대위임령 성취에 기여할 것이라 확신한다.

C. 남기고 싶은 유산

콜먼은 자신의 유산이 "얼마나 멋진 앨범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과 더 깊이 사랑에 빠지고 그분의 사명에 동참하게 되었는가"로 평가받기를 희망한다. 그는 이사야 6장의 경험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만날 때 변화되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자원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의 궁극적인 성공의 척도는 인테그리티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이 일상에서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이 부르는 예배 음악, 그 뒤에 숨겨진 5가지 놀라운 반전

1.0 서론: 예배 음악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대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스튜디오 수준의 예배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습니다. 찬양을 배우기 위해 교회 수련회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거나, 다른 교회는 이 찬양을 어떻게 부를지 궁금해하던 시절은 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처럼 고품질의 예배 음악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몰랐던 놀라운 탄생 비화가 숨어 있습니다. 현대 예배 음악의 지형을 바꾼 인테그리티 뮤직(Integrity Music)의 공동 창업자, 마이크 콜먼(Mike Coleman)의 인터뷰를 통해 당연하게만 여겼던 예배 음악이 어떤 놀라운 과정을 통해 우리 곁에 오게 되었는지, 그 뒤에 숨겨진 5가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 첫 번째 이야기: 표준도, 품질도 없었던 '예배 음악의 혼돈기'

찬양의 멜로디가 교회마다 달랐던 시절, 인테그리티 뮤직이 등장하기 전 예배 음악의 세계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은혜로운 찬양이 특정 교회나 집회에서 불리더라도, 그 감동을 다른 곳으로 옮겨오기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표준'의 부재였습니다. 같은 찬양이라도 교회마다 부르는 방식이 제각각이었습니다. 마이크 콜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어떤 교회에 가서 'I Exalt Thee' 같은 곡을 부르고 다른 교회에 가면 그들은 다르게 불렀습니다. 멜로디가 때로는 달랐죠...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모여 이 노래들을 부를 때 모두가 어떻게 부르는지 알 수 있는 공통된 방법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녹음 기술의 한계로 집회 현장의 감동을 담아낸 테이프는 조악한 음질 때문에 그 자리에 없던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누구나 같은 멜로디로 부를 수 있고, 영적인 깊이와 음악적 완성도를 모두 갖춘 '표준화된 고품질 예배 음악'에 대한 갈증이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3.0 두 번째 이야기: 사역의 시작은 극심한 '영적 가뭄'에서부터

가장 절박한 기도가 위대한 사명의 씨앗이 되다. 놀랍게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임재로 이끈 인테그리티 뮤직의 시작점은 창업자의 극심한 영적 고갈 상태였습니다. 마이크 콜먼은 사역을 시작하기 직전, 자신이 마치 물이 말라버린 시냇가의 엘리야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합니다. 사역은 하고 있었지만 이전과 같은 은혜를 느끼지 못했고, 내면은 타는 듯한 갈증으로 가득 찼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집 밖에 나가 별을 보며 하나님께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한 담대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주의 말씀을 제 입에 담아주소서"라고 부르짖는 선포에 가까웠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 저는 여기 서서 별들을 바라보며 당신의 친구 아브라함과 그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합니다... 오늘 밤 아버지, 저는 당신께 그저 말하는 아무나가 아닙니다... 저를 축복하시고(Baruch) 복이 되게 하소서. 저를 축복하시고 제 아내 지니와 우리 가족, 그리고 제가 이끄는 직원들에게 복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저를 축복하시고 열방에 복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은 이 절박한 기도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문자 그대로 응답하셨습니다. 얼마 후 동업자와 사업 방향을 논의하던 중, 그의 입에서 무심코 한 문장이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끄는 음악이 아니면 하고 싶지 않네." 바로 그 순간, 그의 개인적인 기도는 전 세계를 향한 인테그리티 뮤직의 핵심 사명이 되었습니다. 가장 깊은 영적 가뭄의 순간이, 가장 위대한 사명을 잉태한 것입니다.

4.0 세 번째 이야기: 예기치 못한 '예배곡 공급 위기'

1985년, 더 이상 보낼 찬양이 없었다. 인테그리티 뮤직의 전신인 '호산나 뮤직'은 구독 서비스로 시작했습니다. 두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예배 앨범을 우편으로 보내주는 모델이었죠. 처음 4,000명의 가입을 예상했지만, 시작과 동시에 8,000명이 몰려들었습니다. 폭발적인 반응에 기뻐한 것도 잠시, 그들은 곧 충격적인 현실에 부딪혔습니다. 단 두 개의 앨범을 발매하고 나자,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고품질의 예배 앨범을 시장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1985년 11월에 다음 녹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12,000명이나 있었는데,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새로운 예배곡이 쏟아지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공급 위기'였습니다. 약속된 11월 발매를 위해 남은 시간은 단 8주. 그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직접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켄트 헨리(Kent Henry)가 인도한 전설적인 앨범 'All Hail King Jesus'였습니다. 결국 회사를 끝낼 수도 있었던 이 '공급 위기'는, 역설적으로 인테그리티 뮤직을 단순한 유통업체에서 현대 예배 음악을 정의하는 창조자로 변모시킨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5.0 네 번째 이야기: 업계의 '아웃사이더'가 개척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몰랐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마이크 콜먼과 그의 팀은 기존 음반 산업의 문법을 전혀 몰랐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무지'가 혁신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당시 기독교 음악 산업은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라디오에 홍보하며, 서점에서 판매하는' 방식이 절대적인 표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공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몰랐기에 따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음악 산업의 중심지인 내슈빌이 아닌 앨라배마 주 모빌(Mobile)에 있었기에 그들은 완벽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유통을 위해 내슈빌의 3대 기독교 음반사를 찾아갔을 때, 모두가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기존 모델에 너무 깊이 투자한 나머지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업계의 규칙 대신, 잡지 구독 모델에서 착안한 우편을 통한 '소비자 직접 구독'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습니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가 "혁신은 산업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나온다"고 말했듯, 그들의 지리적, 경험적 소외는 오히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델을 탄생시키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6.0 다섯 번째 이야기: '인테그리티(Integrity)'라는 이름에 담긴 깊은 의미

단순한 정직함 그 이상: 온전함을 향한 여정. 회사 이름을 '인테그리티(Integrity)'라고 지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를 단순히 윤리적 정직함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마이크 콜먼이 의도한 의미는 훨씬 더 깊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온전한 수'를 의미하는 라틴어 '정수(integer)'에서 왔습니다.

"인테그리티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온전하고, 완전하며, 완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이 온전하고 완전하게 되어 그들의 삶 속에 인테그리티를 갖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사명은 단순히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 결과로 깨어지고 나뉜 삶이 '온전하게(whole, entire, and complete)'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인테그리티'라는 이름에는 사람들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7.0 결론: 위대한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인테그리티 뮤직의 이야기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시작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영적 갈증이 사명의 씨앗이 되고, 공급의 위기가 창조의 기회로 바뀌며, 업계에 대한 무지가 오히려 혁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할 때, 그분을 통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인테그리티 뮤직의 역사는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이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풍요가 아닌 결핍이 창조를 낳고, 능숙함이 아닌 무지가 혁신을 이끌며, 영적 충만이 아닌 극심한 갈증이 위대한 사명을 잉태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은 어떤 결핍을 새로운 시작의 재료로, 어떤 막다른 길을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의 입구로 계획하고 계실까요?

 

 

마이크 콜먼: 인테그리티 뮤직과 예배 음악의 지형을 바꾼 이야기

핵심 요약

이 브리핑 문서는 인테그리티 뮤직(Integrity Music)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였던 마이크 콜먼(Mike Coleman)과의 심층 인터뷰를 종합하여, 현대 예배 음악의 역사에 있어 그의 중추적인 역할과 인테그리티 뮤직의 탄생 및 성장 과정을 분석한다. 콜먼은 파편화되고 품질이 일관되지 않았던 1980년대 이전의 예배 음악 환경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manifest presence of God)를 경험하도록 돕는다"는 명확한 사명을 가지고 인테그리티 뮤직을 설립했다.

호산나! 뮤직(Hosanna! Music) 시리즈를 통해 매 격월로 새로운 예배 앨범을 우편으로 발송하는 혁신적인 '정기 구독 클럽' 모델을 개척했으며, 이는 기독교 음악계에 전례 없는 방식이었다. 초기에는 기존의 수준 높은 예배 실황 앨범을 발굴하려 했으나, 공급 부족 문제에 직면하자 직접 앨범을 제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며 All Hail King Jesus를 시작으로 예배 음악의 표준을 정립해 나갔다.

인테그리티 뮤직의 성장은 힐송(Hillsong), 타임 라이프(Time Life)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전 세계 166개국 이상으로의 국제적 확장, 그리고 어린이 음악(The Donut Man), 성경 암송 시리즈, 찬송가집(The Celebration Hymnal) 등 다양한 분야로의 다각화를 통해 가속화되었다. 콜먼은 시종일관 '공연 중심(performance driven)'이 아닌 '임재 중심(presence focused)'의 예배를 강조했으며, 그의 유산은 상업적 성공을 넘어, 그들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순종하게 되었는가로 측정된다.

 

I. 인테그리티 뮤직 이전의 예배 음악 환경

마이크 콜먼에 따르면, 인테그리티 뮤직이 등장하기 전의 예배 음악 지형은 오늘날과 매우 달랐다. 당시 환경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파편화된 예배 문화: 예배 음악은 주로 특정 지역 교회나 부흥 운동의 "주머니(pockets)" 안에 머물러 있었다. 데이비드 앤 데일 개럿(David and Dale Garrett)의 Scripture in Song이나 마라나타 뮤직(Maranatha Music) 같은 선구적인 사역이 있었지만, 통일된 흐름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 품질 및 표준의 부재:
    • 녹음 품질: 많은 지역 교회 녹음물은 음악적, 기술적 품질이 낮아 특정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 외에는 감동을 느끼기 어려웠다.
    • 편곡의 불일치: I Exalt Thee와 같은 동일한 곡이 교회마다 다른 멜로디와 편곡으로 불리는 경우가 흔했다. 이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함께 모여 찬양할 때 공통된 경험을 공유하기 어려웠다.
    • 자료 부족: 널리 보급된 악보나 음악 자료가 부족했다. 많은 곡들이 "작자 미상(Author Unknown)"으로 유통되었다.

II. 인테그리티 뮤직의 탄생

인테그리티 뮤직의 설립은 시장의 필요, 개인의 영적 여정, 그리고 명확한 비전이 결합된 결과였다.

  • 뉴 와인 매거진 (New Wine Magazine): 콜먼은 은사주의 운동을 위한 성경 교육 잡지인 뉴 와인 매거진을 발행하는 비영리 단체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마케팅 전문가 에드 린퀴스트(Ed Lindquist)를 영입하여 잡지의 성장을 도모했다.
  • 예배에 대한 갈증 발견: 잡지 구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예배'가 가장 큰 관심사임이 드러났다. 테리 로(Terry Law) 목사와 돈 모엔(Don Moen)이 인도한 예배 집회와 관련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이러한 필요를 확증했다.
  • 콜먼의 개인적 기도: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dry place)"를 겪던 콜먼은 아브라함 언약을 묵상하며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하나님, 저를 축복하사 열방에 복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을 제 입에 두사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창조하게 하소서." 이 기도는 훗날 사역의 영적 기반이 되었다.
  • 사명의 탄생: 에드 린퀴스트와 대화하던 중 콜먼은 무심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로 이끌지 못한다면 음악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백한 임재를 경험하도록 돕는다(Helping people worldwide experience the manifest presence of God)"**는 인테그리티 뮤직의 핵심 사명으로 발전했다.

III. 호산나! 뮤직: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

인테그리티 뮤직은 기존 기독교 음악 산업의 공식(아티스트 발굴 → 라디오 홍보 → 서점 판매)을 따르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개척했다.

  • 정기 구독 클럽 (Continuity Club): 1985년 7월 10일, 뉴 와인 매거진 구독자들을 대상으로 매 격월 새로운 예배 앨범(카세트테이프)을 우편으로 직접 발송하는 호산나! 뮤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는 기독교 음악계에서 혁명적인 시도였다. 예상 구독자 4,000명을 넘어 즉시 8,000명이 가입했고, 몇 달 만에 12,000명으로 급증했다.
  • 위기에서 비롯된 전환: 초기의 목표는 기존에 제작된 양질의 예배 앨범을 찾아 라이선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개의 앨범(Let Praise Arise, Behold His Majesty)을 발매한 후, 기준에 맞는 녹음물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다.
  • 자체 제작의 시작: 12,000명의 구독자가 다음 앨범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콜먼은 프로듀서 톰 브룩스(Tom Brooks)에게 8주 만에 앨범 제작을 의뢰했다. 그 결과 켄트 헨리(Kent Henry)가 인도한 All Hail King Jesus가 탄생했으며, 이는 인테그리티가 직접 제작한 첫 번째 공식 앨범이 되었다. 이로써 인테그리티는 단순 유통 채널에서 콘텐츠 제작자로 전환하게 되었다.

IV. 핵심 가치와 목표

인테그리티 뮤직의 모든 활동은 몇 가지 핵심적인 가치에 의해 움직였다.

  • 표준화와 탁월성: 작곡가의 원곡 의도에 충실한 편곡과 멜로디를 표준화하고, 영적 수준에 걸맞은 최고의 음악적, 기술적 품질을 제공하고자 했다.
  • '인테그리티(Integrity)'의 의미: 회사명 '인테그리티'는 종교적 용어가 아니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라틴어 '정수(integer)'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온전함(wholeness)'을 의미한다. 사명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써 내면이 '온전하고 완전하게' 되는 것을 돕는 것이었다.
  • 임재 중심의 철학: 모든 사역의 핵심은 "공연보다 임재(Presence over Performance)"였다. 조명, 음향 등 제작 요소는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에게서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예배 경험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V. 주요 인물 및 공헌

인테그리티 뮤직의 성공 뒤에는 여러 핵심 인물들의 헌신이 있었다. 마이크 콜먼은 이들의 공헌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름 공헌 요약
돈 모엔 (Don Moen) 놀라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예배 인도자, 작곡가. 사교적이며 진정한 개척자.
에드 린퀴스트 (Ed Lindquist) 탁월한 마케터. 목표 지향적이고 탁월함을 추구했으며, 인테그리티에 크게 기여.
톰 브룩스 (Tom Brooks) 뛰어난 오케스트레이터, 음악가, 지휘자, 프로듀서. 개척자이자 충실한 인물.
폴 발로쉬 (Paul Baloche) 챔피언 같은 사람. 놀라운 작곡가이자 문제 해결에 창의적인 인물. 진정한 친구.
달린 첵 (Darlene Zschech) 여성 예배 인도 분야의 진정한 개척자. 명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경건하고 현실에 기반을 둠.
론 케놀리 (Ron Kenoly) 흑인 교회와 백인 교회를 아우르는 예배의 새로운 지평을 연 개척자. 기름부음 넘치는 예배 인도자.
폴 윌버 (Paul Wilbur) 메시아닉 예배 음악을 개척하고 전 세계에 전파한 인물. 예언적이고 열정적인 리더.
켄트 헨리 (Kent Henry) 예언적이고 날카로우며 열정적인 예배 인도자이자 작곡가. 충실하며 포기하지 않는 사람.
밥 피츠 (Bob Fitts) 훌륭한 예배 인도자이자 작곡가. 열방을 사랑하며 긍휼이 가득한 인물.

VI. 성장의 주요 단계와 이정표

인테그리티 뮤직은 24년 동안 수많은 중요한 성장 단계를 거쳤다.

  • 제품 다각화:
    • Scripture Memory Songs 시리즈: 성경 구절을 가사로 한 노래 시리즈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 The Donut Man (Rob Evans): 어린이 비디오 및 음악 프로젝트를 통해 가족 단위로 사역을 확장했다.
    • The Celebration Hymnal (1997): 2백만 부 이상 판매된 초교파 찬송가집으로, 전통적인 교회에 인테그리티의 곡들을 소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전략적 파트너십:
    • 힐송 (Hillsong): 돈 모엔이 발굴한 힐송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Shout to the Lord 앨범을 미국에 소개하며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파트너십은 14년간 지속되었다.
    • 타임 라이프 (Time Life): 2000년, 타임 라이프와 협력하여 Songs for Worship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라나타, 빈야드 등 타 레이블의 곡까지 라이선스하여 일반 방송 채널을 통해 대대적으로 광고했고, 1년 만에 백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총 2,600만 장 이상의 CD를 판매했다.
  • 국제적 녹음: Shalom Jerusalem(예루살렘), Rejoice Africa(남아프리카), Revival in Belfast(북아일랜드) 등 전 세계 각지에서 앨범을 녹음하며 글로벌 비전을 실현했다.

VII. 글로벌 비전과 국제 사역

콜먼의 초기 비전부터 인테그리티 뮤직은 국제적인 사역을 지향했다.

  • 전 세계적 유통망: 영국, 호주, 싱가포르, 남아프리카에 지사를 설립하고 전 세계 166개국 이상에 음악을 유통했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사용자를 위한 라틴 아메리카 레이블도 운영했다.
  • 워십 인터내셔널 (Worship International): 1988년, 훈련과 개발을 통해 받은 것을 되돌려주기 위한 비영리 사역 단체를 설립했다. 전 세계에서 예배 세미나를 개최하며 현지 예배 사역자들을 양성했다.
  • IBOW (International Bridges of Worship): 이 비영리 단체는 현재 'IBOW'로 재탄생하여 콜먼이 이끌고 있다. 주요 목표는 이란, 러시아 등 비영어권 국가의 예배자들이 자신의 언어와 음악 스타일로 토착적인 예배(indigenous worship)를 발전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콜먼은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모든 민족과 언어'가 드리는 예배의 성취라고 믿는다.

VIII. 콜먼의 성찰과 유산

인터뷰 말미에 마이크 콜먼은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과 유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성찰했다.

  • 예배 사역자들을 위한 조언:
    1. 독창성을 지켜라: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창의성과 부르심을 따르라.
    2. 수직적 관계에 집중하라: 사역 자체가 아닌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집중하라. 사역은 그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 예배의 상업화에 대한 관점: 음악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제작 요소나 공연이 하나님의 임재라는 본질을 가릴 때 문제가 된다.
  • 궁극적인 유산: 콜먼은 자신의 유산이 앨범 판매량이나 회사의 규모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바라는 진정한 유산은, 사람들이 인테그리티 뮤직의 사역을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는가"**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진정으로 경험한 사람은 변화되고, 그분의 사명에 자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테그리티 뮤직의 역사

단답형 퀴즈

다음 질문에 대해 제공된 자료에 근거하여 2-3 문장으로 답하시오.

  1. <뉴 와인 매거진>은 어떻게 호산나! 뮤직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까?
  2. 인테그리티 뮤직 이전의 예배 음악 환경은 어떠했으며, 호산나! 뮤직 시리즈는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습니까?
  3. 인테그리티 뮤직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고, 이것이 당시 왜 "혁명적"이라고 여겨졌는지 서술하시오.
  4. 인테그리티 뮤직의 핵심 사명은 무엇이었으며, 마이크 콜먼의 개인적인 영적 경험이 이 사명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5. 호산나! 뮤직이 처음 두 개의 앨범을 발매한 후, 왜 자체적으로 음반을 제작하기 시작해야 했습니까?
  6. 회사 이름인 "인테그리티(Integrity)"의 유래와 그 의미를 설명하시오.
  7. "Songs for Worship" 시리즈는 무엇이었으며, 이것이 회사의 주요 성장 동력이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인테그리티 뮤직과 힐송(Hillsong)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파트너십의 영향은 어떠했습니까?
  9. 인테그리티의 비영리 부문인 '워십 인터내셔널(Worship International)'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10. 마이크 콜먼에 따르면, "공연 중심(performance-focused)" 예배와 "임재 중심(presence-focused)" 예배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퀴즈 정답

  1. <뉴 와인 매거진>은 독자 설문조사를 통해 예배 음악에 대한 높은 수요를 파악했습니다. 테리 로(Terry Law)의 찬양과 경배에 관한 글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마이크 콜먼과 에드 린퀴스트는 잡지 구독자들을 위한 예배 자료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호산나! 뮤직을 시작했습니다.
  2. 인테그리티 이전의 예배 음악은 지역 교회나 집회 단위의 "주머니(pockets)" 형태로 존재했으며, 음질, 멜로디, 배급이 일관되지 않았습니다. 호산나! 뮤직은 높은 품질의 표준화된 편곡을 제공하고, 기독교인들이 어디서든 같은 버전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3. 인테그리티의 초기 모델은 '연속성 클럽(continuity club)'으로, 구독자에게 격월로 새로운 예배 카세트테이프를 우편으로 직접 발송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아티스트, 라디오, 서점 중심의 전통적인 기독교 음악 산업 모델을 우회한 직접 소비자 대상(direct-to-consumer) 접근법이었기에 혁명적이었습니다.
  4. 핵심 사명은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타나신 임재(manifest presence of God)를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마이크 콜먼이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에 아브라함 언약에 기초하여 "나를 축복하사 복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경험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기도를 통해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끄는 음악"이라는 사명이 구체화되었습니다.
  5. 호산나! 뮤직은 격월로 새로운 음반을 발송하기로 약속했지만, 처음 두 개의 앨범을 라이선스한 후, 자신들의 기술적, 영적 기준을 충족하는 고품질의 라이브 예배 실황 음반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1985년 11월 발송할 세 번째 앨범을 위해 8주 만에 직접 음반을 제작해야만 했습니다.
  6. "인테그리티"라는 이름은 수학 용어 '정수(integer)'의 어원인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온전함(wholeness)'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온전하고 완전하게 된다는 회사의 사명을 반영하며, 종교적인 용어가 아니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선택되었습니다.
  7. "Songs for Worship"은 타임 라이프(Time Life)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제작된 앨범 시리즈로, 기독교 채널이 아닌 일반 방송 채널에서 대대적으로 광고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기독교 서점에 가지 않는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2,600만 장 이상의 CD를 판매하며 회사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8. 인테그리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돈 모엔이 호주 힐송 교회의 음악을 발견하면서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인테그리티는 힐송의 음악을 미국 시장에 유통하며 그들의 성장을 도왔고, 특히 달린 첵이 인도한 <Shout to the Lord>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9. 워십 인터내셔널은 1988년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인테그리티가 전 세계 교회로부터 받은 축복(노래)에 보답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주요 목적은 전 세계 예배 인도자들과 교회 음악가들을 위한 훈련과 개발을 제공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수많은 세미나와 '인테그리티 워십 인스티튜트'를 운영했습니다.
  10. 공연 중심 예배는 청중의 관심을 무대 위 공연자들에게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임재 중심 예배는 조명이나 음향 같은 제작 요소를 사용하더라도, 그 목적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서술형 에세이 질문

다음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여 답하시오. (정답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1. 인테그리티 뮤직의 성공은 전통적인 기독교 음악 산업 모델의 어떤 한계점을 드러냈으며, 그들이 개척한 새로운 모델은 전 세계 교회의 예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시오.
  2. 마이크 콜먼은 "우리는 (기존의 노래를) 수확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흐름을) 이끌고 기준을 세우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전환이 인테그리티 뮤직의 전략, 특히 노래 발굴 및 음악 출판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설명하시오.
  3. 마이크 콜먼의 개인적인 영적 경험과 인테그리티 뮤직의 사명("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돕는 것")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시오. 이 사명이 회사의 의사결정, 제품 개발, 예배 인도자 선정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는지 논하시오.
  4. 인테그리티 뮤직은 지역적 특색을 고려한 국제적 확장을 어떻게 추진했는가? 전 세계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영국, 호주, 라틴 아메리카 등 특정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사용한 전략들을 설명하시오.
  5. 마이크 콜먼이 마지막에 언급한 "사역을 섬기는 것"과 "주님을 섬기는 것"의 차이점, 그리고 "음악(music)"과 "소리(sound)"의 차이점에 대해 논하시오. 이러한 구분이 예배 사역의 상업화에 대한 비판에 대해 어떤 통찰력을 제공하는지 설명하시오.

 

주요 용어 해설

용어 설명
인테그리티 뮤직 (Integrity Music) 마이크 콜먼과 에드 린퀴스트가 공동 창립한 회사. 호산나! 뮤직 제품 라인을 기반으로 1987년에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타나신 임재를 경험하도록 돕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호산나! 뮤직 (Hosanna! Music) 1985년 7월 10일에 시작된 인테그리티 뮤직의 초기 제품 라인이자 연속성 클럽. 구독자들에게 격월로 새로운 예배 음악 카세트테이프를 우편으로 발송했다.
뉴 와인 매거진 (New Wine Magazine) 마이크 콜먼이 사장으로 있었던 성경 교육 잡지로, 주로 카리스마 갱신 운동에 초점을 맞췄다. 이 잡지의 55,000명 구독자층은 호산나! 뮤직의 초기 청중이 되었다.
연속성 클럽 (Continuity Club) 정기적으로(격월) 회원들에게 새로운 제품(카세트테이프)을 우편으로 직접 발송하는 구독 기반 비즈니스 모델. 이는 인테그리티 뮤직의 혁신적인 유통 방식이었다.
임재 중심 예배
(Presence-Focused Worship)
인테그리티 뮤직의 핵심 철학. 무대 위 공연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개인적으로 깊이 경험하도록 돕는 것을 예배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 접근 방식이다.
마이크 콜먼 (Mike Coleman) 인테그리티 뮤직의 공동 창립자이자 2011년 6월 1일까지 CEO로 재직했다. 음악가이자 비즈니스 리더로서 회사의 성장과 비전을 이끌었다.
에드 린퀴스트 (Ed Lindquist) 도요타 자동차의 마케팅 임원 출신으로, 마이크 콜먼과 함께 인테그리티 뮤직을 공동 창립했다. 그의 마케팅 전문 지식은 회사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돈 모엔 (Don Moen) 인테그리티 뮤직의 대표적인 예배 인도자, 작곡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회사의 음악적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톰 브룩스 (Tom Brooks) 인테그리티 뮤직이 자체 제작한 첫 앨범 <All Hail King Jesus>를 포함하여, 초창기 호산나! 뮤직의 수많은 앨범을 프로듀싱한 뛰어난 프로듀서이자 편곡자.
워십 인터내셔널
(Worship International)
1988년에 설립된 인테그리티 뮤직의 비영리 부문. 전 세계 예배 인도자들을 훈련하고 개발하기 위해 세미나와 교육 과정을 운영했다. 현재는 'International Bridges of Worship (IBEOW)'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Songs for Worship 2000년에 타임 라이프(Time Life)와 협력하여 시작한 매우 성공적인 앨범 시리즈. 일반 TV 채널 광고를 통해 기독교 시장을 넘어 수백만 명의 새로운 청중에게 다가갔다.

 

 

 


Treasures in Darkness | 한국어 번역 

어둠 속의 보물들

하와이 섬(Hawaii Island) 서쪽 해안 앞바다에서 다이빙 보트에 앉아 있을 때, 아내와 딸들은 해가 지기만을 긴장 속에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한 번도 **야간 다이빙(night dive)**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몇 년 전, 아들과 나는 **만타가오리(manta ray)**와 함께하는 야간 다이빙을 경험한 적이 있다. 수중 손전등이 플랑크톤을 모아들이면, 어둠 속에서 커다란 만타가오리들이 나타나 먹이를 삼키듯 우아하게 회전하며 지나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건 정말 놀라운 수중 발레 같았다. 오늘 밤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다이빙이 분명 흥미로울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우리를 안내해줄 다이브 마스터들을 섭외했다. 그들은 이 지역 바다를 잘 알고 있었고, 우리의 안전을 더욱 높여주었다. 아내 지니(Jeanie)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반드시 주요 다이브 마스터의 손을 잡고 내려가겠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해가 지고, 약간의 망설임과 설렘을 품은 채 우리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내려가는 것과도 같았다. 산호초는 밤이 되면 낮에는 볼 수 없는 생명들과 장면들로 깨어난다. 손전등은 어둠에 감춰져 있던 것들을 밝혀준다. 어둠 속에는 발견을 기다리는 보물들이 있지만, 보려는 눈이 있어야만 찾을 수 있다. 나는 일상의 삶에서도 이것이 진리임을 깨달았다. 역경과 고통의 어둠이 찾아올 때,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이 ‘보물’을 발견하는지, 아니면 ‘문제’만 보는지를 결정한다.

역경과 고통의 어둠이 찾아올 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선택이 보물을 찾는지, 문제만 보는지를 결정한다.

나는 삶 속에서 기회와 성공, 축복이라는 빛이 나를 비춘 시기를 많이 경험해왔다. 나는 멕시코 만(Gulf of Mexico) 연안 근처의 중간 규모 도시, 앨라배마주의 모빌(Mobile, Alabama)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우리가 LA에 산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 LA는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가 아니라 Lower Alabama였다. 부모님은 음악을 사랑했으며, 내가 12살쯤 되었을 때 나는 드럼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소란을 좀 피우고 싶었던 것이다!) 이후 고등학교 밴드와 투어 밴드에서 연주했고, 그 후 몇 년 동안 드러머로 앨범 세 장을 녹음했다. 그러나 그때는 음악이 내 인생에서 그렇게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서 금융학 학위를 취득했다. 경력 초기에는 교회의 비즈니스 관리자, 그리고 비영리 출판 기관의 대표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7년, 나는 **인테그리티 뮤직(Integrity Music)**을 공동 설립했다. 앨라배마주 모빌에 본사를 둔 기독교 음악 회사였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고 1994년에는 상장해 NASDAQ에서 주식이 거래되었다. 회사는 영국·호주·남아프리카·싱가포르에 지사를 두는 글로벌 기업으로 확장되었고, 160개국 이상에 음악을 유통했다. 여러 앨범이 플래티넘과 골드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후 우리는 INO Records 레이블을 인수하며 영역을 확장했다.
우리가 함께 일한 아티스트들은 다음과 같았다: MercyMe, Darlene Zschech, Don Moen, Israel Houghton, Hillsong Music, Paul Wilbur, Paul Baloche, Kari Jobe.

회사가 음악을 넘어 책과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되며 Integrity Media로 사명을 변경했다. 2004년에는 비상장 회사가 되었고, 2011년에는 Integrity Music을 포함한 모든 부문이 매각되었다. 나는 그 회사에서 24년 동안 대표이자 CEO로 일하는 특권을 누렸다. 그중 10년은 상장사로서의 시기였다. 그때 나는 놀라운 팀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Integrity Media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빛과 은혜로 가득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내 삶에도 어둡고 힘든 시간들이 찾아왔다. 2011년 회사 매각 이후 새로운 기회를 찾던 중, 나는 의사에게서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신체의 신경—특히 손과 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몸 전체에 타는 듯한 통증이 번쩍이며 지나가고, 심할 때는 밤에 잠에서도 깼다.

2012년, 나는 신경외과 의사를 찾아갔다. 그는 MRI를 확인한 후 내게 **‘곧 목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 척수가 여러 곳에서 압박받고 있었고, 잘못된 충격을 받으면 마비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나를 깊이 흔들었다. 이제 원치 않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모험을 좋아하지만, 이 모험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상태가 매우 복잡해, 결국 나는 메릴랜드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병원(Johns Hopkins Hospital)에 있는 세계적 수준의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의뢰되었다. 그는 나를 검사한 뒤, **‘가능한 빨리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나의 목에서 두 번의 대수술을 진행했고, 척수까지 직접 수술해야 했다. 아프다는 말로는 부족한 고통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이후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이 찾아왔다.

호흡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때때로 공황 발작까지 왔다. 평생 자신감 넘치던 내가 침착함을 잃는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몸을 숙이면 혈압이 떨어져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4~6시간이 걸렸다. 균형 감각, 소화, 체온, 심장 박동 등 자동적으로 조절되던 모든 것들이 흐트러졌다.

마침내 신경과 전문의가 나의 상태를 **‘자율신경계실조(dysautonomia)’**로 진단했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신체 기능을 조절하는 ‘자동신경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조절할 수 없었고, 의사들도 해결할 수 없었다.

나는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던 활동적인 사람에서, 일상생활조차 제약받고 더 이상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마치 삶의 경기장에서 제외되어 부상자 명단에 올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으로, 노력이나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긴 시련의 계절을 맞이한 것이다.

아내 지니는 이 모든 시간 동안 나를 돌봐주었다. 가족과 몇몇 친구들도 곁을 지켰다. 그러나 가장 큰 싸움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마음속 어둠이었다. 미래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잃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나는 하나님께 내 어둠 속에 빛을 비추어 달라고 울부짖었다.

처음으로, 나는 노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긴 터널 속에 있었다.

그러나 서서히, 하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나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셨고, 나는 마음과 생각 속에서 어둠 속 보물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더 깊은 신뢰에서 오는 이해할 수 없는 평안, 새로운 감사의 시선, 축복을 세어보는 마음이 생겼다. 희망이 내 안에서 다시 자라났고, 나는 역경·고통·예상치 못한 변화가 ‘좌절’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다시 일어나는 준비’, 즉 ‘컴백의 무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경·고통·예상치 못한 변화는 종종 좌절이 아니라, 당신의 더 큰 의미와 목적을 향한 승격의 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 중 하나는 비비안 그린(Vivian Greene)의 말이다.

“삶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비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진리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며, 스스로 통제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삶은 그런 식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내 소중한 친구 찰스 심프슨(Charles Simpson)은 “삶은 예상한 것보다 예상하지 못한 것에 의해 더 많이 정의된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예상치 못한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그것을 ‘문제’로만 볼지, 아니면 ‘보물’을 발견할 기회로 볼지 결정한다. 나는 승리 속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참된 기쁨과 평안을 발견했다.

내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내 안에는 새로운 비전과 목적의 명확성이 태어났다. 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고 이루도록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바로 내 사명임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현실 속에서 이 사명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2016년, 한 기독교 컨퍼런스에서 몇몇 사람들이 깊은 긍휼함을 품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고,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치유하신 것이다.


아내 지니(Jeanie)는 이 모든 시간 동안 사랑으로 나를 돌봐주었다. 가족과 몇몇 가까운 친구들도 함께 서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싸움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내면의 싸움이었다. 나는 앞날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잃고 깊이 흔들렸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내 어두움 속에 빛을 비추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달라고 간구했다.

내 삶에서 처음으로, 나는 어떤 노력으로도 문제를 밀어내거나 상황을 바꾸거나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없는 긴 시련의 계절 속에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하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보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빛은 내 마음과 생각을 향해 비춰왔다. 나는 그분을 더 깊이 신뢰함으로써 이해를 초월하는 평안을 경험했다. 감사하는 법을 새롭게 배웠고, 내게 주어진 축복들을 다시 세기 시작했다. 희망은 조용한 새싹처럼 내 안에서 자라났다. 그러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역경, 고통, 예상치 못한 변화는 겉보기에는 ‘후퇴’처럼 보이지만, 종종 ‘반등을 위한 준비’**라는 것을. 사실, 이런 시간은 더 큰 의미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승진의 문이었다.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역경, 고통, 예상치 못한 변화는 후퇴처럼 보이지만, 종종 당신의 ‘컴백’을 위한 준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비비안 그린(Vivian Greene)의 말이다.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리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상황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삶을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내 친한 친구 찰스 심슨(Charles Simpson)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예상치 못한 것으로 더 크게 정의된다.
그가 옳았다. 예기치 않은 변화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문제’로 볼지, 아니면 ‘보물’이 숨겨진 기회로 볼지가 결정된다. 나는 알게 되었다. 진짜 삶이란, 고난이든 승리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누리는 기쁨과 평안에 있다는 것을.

비록 내 어려운 상황은 즉시 바뀌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 새로운 비전과 목적의 명료함이 태어났다. 내가 깨달은 중요한 진리는 이것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찾는 가장 중요한 길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발견하고 이루도록 돕는 일, 그것이 내 열정이자 사명이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지금의 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2016년, 기독교 콘퍼런스에서 몇 명의 남성들이 자비에 이끌려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고, 그때 하나님은 나를 치유하셨다.

내 자율신경계는 회복되기 시작했고, 수년 동안 누리지 못하던 정상적인 기능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마치 오랫동안 밀려 있던 물이 갑자기 빠져나가듯, 내 삶의 어둠도 서서히 물러났다.


그날 이후, 나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수년 동안 흐트러져 있던 내 자율신경계가 안정되었고, 마음과 몸에 짓누르던 그 깊고 무거운 어둠이 마침내 걷혀가기 시작했다. 마치 장기간 폭풍 속을 헤매던 배가 서서히 잔잔한 바다로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몸이 회복되자, 나는 과거에 누렸던 활동들을 하나씩 되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미래’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 미래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더 깊고, 더 단단하며, 더 넓게 열린 길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오랜 고난의 시간은 내게 새로운 눈을 주었다는 것을.
빛 속에서만 볼 수 없었던 것들—예견할 수 없던 보물들—그것들은 어둠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그 여정 속에서 나는 한 가지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둠을 허락하실 때, 그 어둠 속에 반드시 보물을 숨겨두신다.
그리고 우리가 그 어둠을 뚫고 나아가려 할 때, 그분은 반드시 그 보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빛을 비추신다는 것이다.

나는 마침내 그 보물을 찾았다.
그것은 내 몸의 회복만이 아니었다.
내 마음, 내 믿음, 내 목적,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모두 새롭게 재편되었다.

그 후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각자 겪는 어둠 속에서도 보물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내 새로운 사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역할이 아니라, 내가 살아야 할 이유이자 방향이 되었다.

(원문 : https://mikecoleman.com/my-story/)

(참고 : https://csmpublishing.org/wp-content/NewWineArchives/Full_Issues/1986/NewWineMagazine_Issue_11_1986.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