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Dabke

팔레스타인 전통 의상과 춤에 숨겨진 놀라운 이야기 5가지
땅을 울리는 발구르기 소리, 땀과 흙먼지가 뒤섞인 축제의 열기 속에서 댄서들이 하나의 몸처럼 움직입니다. 할머니의 손에서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드레스에는 정교한 문양이 실로 꿰매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상징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이 전통들은 사실 정체성, 저항, 그리고 놀라운 역사적 반전에 대한 복잡한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의상과 춤 뒤에 숨겨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섯 가지 놀라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하나의 춤, 두 개의 국가 서사: '두 번 발명된' 춤, 답케(Dabke)
하나의 춤이 어떻게 서로 적대하는 두 민족의 심장이 될 수 있었을까? 그 이야기는 ‘답케’라는 춤이 원래 동부 지중해(레반트) 지역의 아랍 공동체에서 결혼식이나 사교 모임 때 추던 공유된 민속춤이었다는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춤은 20세기에 들어 두 번의 극적인 ‘발명’을 거치며 서로 다른 두 국가의 상징으로 재탄생합니다. 이는 문화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관계적 정체성’, 즉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상징을 재창조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발명’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사이, 시오니스트 개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유럽의 유약한 ‘게토 유대인’ 이미지와 극명히 대조되는, 팔레스타인의 흙에서 자란 선인장처럼 겉은 거칠지만 속은 강인한 새로운 인간상, 바로 ‘사브라(Sabra)’를 창조하고자 했습니다. 이 새로운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그들은 주변 아랍인들의 춤인 ‘답케(dabkeh)’에 매료되었습니다. 땅을 힘차게 딛는 동작과 집단의 연대감을 상징하는 춤사위는 그들이 꿈꾸던 강인하고 남성적인 이상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이렇게 아랍의 춤은 이스라엘의 ‘데브카(debkah)’로 차용되어 유럽이 아닌 중동에 뿌리를 둔 ‘진정한’ 이스라엘 문화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1967년 전쟁을 기점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두 번째 발명’을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에 맞서 자신들의 독립적인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고 저항의 상징을 찾아야 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 녹아 있던 답케를 팔레스타인 고유의 민속 유산(‘알-투라쓰 알-샤비 알-필라스티니’)으로 공식화했습니다. 답케는 단순한 춤을 넘어, 빼앗긴 땅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다짐하는 의식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같은 뿌리를 둔 춤이 서로를 규정하는 거울이 되어, 대립하는 두 국가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핵심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문화가 정치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반전입니다.

2. 단순한 옷이 아닌 '지도': 당신의 출신을 말해주는 드레스, 토브(Thobe)
팔레스타인의 전통 의상 ‘토브(Thobe)’는 단순한 옷이 아닙니다. 그 위에 놓인 정교한 자수 ‘타트리즈(Tatreez)’는 착용자의 정체성을 담은 시각적 언어이자, 그들의 출신지를 알려주는 지도 역할을 합니다.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상징물이 한 땀 한 땀 수놓아진 문양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토브 한 벌을 보는 것만으로도 팔레스타인의 다채로운 지리를 여행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각적 언어는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예를 들어, 야파 지역의 토브는 그곳의 명물인 오렌지 나무와 꽃 문양으로 쉽게 구별되며, 라말라 지역은 붉은 꽃 문양으로 유명합니다. 천의 색깔 또한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라말라, 야파, 베들레헴 지역에서는 짙은 붉은색 천으로 만든 토브를 볼 수 있는 반면, 가자 지역의 토브는 밝은 붉은색을 사용하고, 헤브론 지역에서는 짙은 붉은색과 갈색 천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미학을 넘어, 각 공동체의 정체성과 땅과의 깊은 유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1980년대 1차 인티파다(민중 봉기) 당시 토브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과의 연결성과 꺾이지 않는 저항 정신을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옷이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한 토브가 품고 있는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전문가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수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각 토브에는 여러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습니다. 전통 의상으로서의 그 역사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위에 놓인 타트리즈는 그것이 만들어진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3. 성 역할의 역설: 남성성의 춤을 만든 여성들
답케와 데브카는 양쪽 민족 모두에게 강인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춤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땅을 개척하는 ‘사브라’를, 팔레스타인은 민족을 위해 싸우는 자유 투사 ‘피다이’를 춤을 통해 형상화했습니다. 그러나 남성성을 상징하는 이 춤의 무대 뒤편에서, 그 안무를 만든 이들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역설을 드러냅니다. 두 국가 건설 프로젝트 내에서 성 역할이 어떻게 규정되고 협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데브카’가 강한 남성성을 상징함에도 불구하고, 그 춤을 만들고 체계화한 주역은 구릿 카드만(Gurit Kadman)과 같은 여성 안무가들이었습니다. 이는 국가 건설이라는 남성 중심적 프로젝트의 문화적 상징을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창조했음을 의미합니다. 여성들은 무대 뒤에서 새로운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을 빚어내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반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답케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이 공동체의 ‘현대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여성 댄서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위해 춤 동작을 ‘남성화’해야 했습니다. 즉, 여성성을 드러내는 부드러운 동작 대신 남성들처럼 강하고 절도 있는 동작을 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이는 저항의 이상이 남성적인 투사의 이미지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여성이 남성성의 상징을 창조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성이 남성적인 방식으로 춤을 춰야만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은, 국가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성 역할이 얼마나 복잡하게 협상되는지를 보여줍니다.
4. 단순한 스텝을 넘어: 존재감을 '짓밟아 새기는' 춤
답케 춤의 핵심적인 상징성은 ‘답케(Dabke)’라는 단어의 의미 그 자체에 담겨 있습니다. 이 단어는 아랍어로 문자 그대로 "발을 쿵쿵 구르다" 또는 "짓밟다"를 의미하며, 이 발 구르기 동작은 춤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스텝을 넘어, 공동체의 연대와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강력한 몸짓입니다.
댄서들이 일제히 땅을 짓밟는 이 동작은 무엇보다 땅과의 깊은 연결성을 주장하는 행위입니다. 동시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티는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자신들의 존재감을 세상에 각인시키는 강력한 상징이 됩니다. 댄서들이 손을 잡거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일렬 또는 원을 이루어 추는 춤의 형태 역시 중요합니다. 이는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조화와 연대를 강조하며,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는 공동체 정신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민속의 보존 자체가 저항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음을 한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잠식과 팔레스타인의 공간, 시간, 존재의 소멸에 직면하여, 답케와 같은 토착 관습의 보존은 강탈에 강력히 저항합니다. 민속은 저항입니다.”
하지만 답케는 과거의 유물로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은 힙합, 레게, 일렉트로닉 음악과 결합하여 '일렉트로-답케(electro-dabke)'나 '샴스텝(shamstep)'과 같은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는 답케가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진화하는 현대적인 예술 형태임을 증명합니다. 땅을 딛는 그들의 발걸음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강렬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5. 당신의 귀환권을 입다: 케피예와 상징적 장신구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은 의복과 춤뿐만 아니라, 케피예와 다양한 장신구를 통해서도 강력하게 표현됩니다. 이들은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연대와 저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물고기 그물과 올리브 잎을 형상화한 독특한 문양의 케피예(keffiyeh)는 이제 팔레스타인의 회복탄력성과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는,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이를 착용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현하는 행위로 인식됩니다.
놋쇠로 만든 전통 장신구(brass jewelry) 또한 팔레스타인 문화유산을 기념하고 지지하는 의미로 착용됩니다. 이러한 장신구에는 케피예의 물결무늬나 저항을 상징하는 수박 같은 문양이 새겨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일상의 작은 소품 하나하나가 문화적 자부심과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 의복과 장신구들은 매년 7월 25일 '팔레스타인 의상의 날(Palestinian Costume Day)'에 전 세계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착용합니다. 이 날은 다른 문화권에서 팔레스타인 전통 의상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문화적 전유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되어, 이제는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기념하고 보존하는 중요한 날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론: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답케 춤과 토브 의상 같은 문화적 상징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볼거리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한 민족의 역사, 정체성, 그리고 정치적 투쟁의 복잡한 층위가 촘촘히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의 춤이 두 국가의 상징으로 재창조되고, 옷의 문양이 지도가 되며, 춤의 스텝 하나하나가 존재 증명의 외침이 되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문화적 상징을 마주할 때, 그 뒤에 숨겨진 연결, 갈등, 그리고 재창조의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을 얼마나 놓치고 있는 것일까요?
댑케와 민족주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춤, 정체성, 경합에 대한 브리핑
요약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민족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다르거나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고 경합하는 복잡한 관계적 과정을 통해 구성된다. '댑케(dabkeh)' 또는 '뎁카(debkah)'로 알려진 민속춤은 두 민족이 어떻게 민족주의를 수행하고, 물질화하며, 그 의미를 두고 경합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문화적 실천이다. 이 춤은 본래 아랍 레반트 지역의 공유된 사회적 춤이었으나, 두 차례에 걸쳐 '발명된 전통'으로 재탄생했다. 1940년대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아랍의 댑케를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뎁카'로 전유 및 변형시켰고, 1960년대 후반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들은 이를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문화유산을 상징하는 '댑케'로 재정의했다.
이러한 관계적 민족주의의 양상은 세 무용단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용단 **엘 푸눈(El-Funoun)**은 춤을 통해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고, 전통과 현대적 혁신 사이에서 정체성을 협상한다. 갈릴리의 이스라엘 유대인 무용단 **카르메이 마홀(Karmei Makhol)**은 춤을 통해 아랍의 공간을 이스라엘의 장소로 변모시키고, 팔레스타인 타자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재생산하며 권력 위계를 공고히 한다. 갈릴리의 이스라엘 아랍 무용단 **알 아사옐(Al-Asayyel)**은 두 민족 '사이'에 위치하며, 관객(이스라엘 유대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아랍)에 따라 공연의 '진정성'을 유연하게 조정하며 복합적인 정체성을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댑케/뎁카 춤과 더불어 토브(thobe)나 케피예(keffiyeh) 같은 전통 의상은 단순한 문화유산을 넘어, 민족 정체성, 저항, 그리고 권력 관계가 협상되고 물질화되는 역동적인 장(場)으로서 기능한다.

1. 춤을 통한 민족주의의 수행
1.1. 댑케/뎁카: 공유된 문화적 실천의 경합
댑케는 동부 레반트 지역의 공유된 사회 문화적 경관의 일부를 형성하는 아랍 춤 행사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담론 속에서 이 춤은 두 번에 걸쳐 '발명된 전통'이 되었다. 첫 번째는 1940년대에 새로 창조된 이스라엘 민속춤의 결정적인 부분인 이스라엘의 '뎁카'로, 두 번째는 1960년대 후반 팔레스타인 민족 유산으로 재분류된 팔레스타인의 '댑케'로 재창조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관계적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집단적 정체성 과정이 단지 민족국가의 영토 경계 내에서나 그 경계를 넘어서 협상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민족과 그 '타자' 사이의 관계적 과정으로서 협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튜어트 홀(Stuart Hall)에 따르면, 정체성은 "차이를 통해서, 차이 없이는 구성되지 않으며",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그 긍정적 의미가 구성될 수 있다. 댑케/뎁카는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사이의 차이가 상호 연결성을 통해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실천으로 기능한다.
1.2. 팔레스타인 문화 상징과 저항
팔레스타인 문화에서 춤과 의상은 민족 정체성과 저항의 강력한 상징이다. 이는 1948년 나크바(Nakba) 이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표현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욱 중요해졌다.
- 팔레스타인 전통 의상의 날 (Palestinian Costume Day): 매년 7월 25일, 전 세계 팔레스타인인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팔레스타인 문화와 땅에 대한 권리를 기념한다. 이 전통은 2014년경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전통 의상에 대한 문화적 전유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되었다. 이 날은 행진, 노래, 그리고 댑케 춤을 통해 회복력과 유산을 기념하는 상징이 되었다.
- 토브 (Thobe): 복잡한 자수, 즉 '타트리즈(tatreez)'로 장식된 팔레스타인 전통 드레스다. 각 토브의 색상과 디자인은 착용자의 출신 지역을 나타낸다.
- 지역적 상징: 라말라, 야파, 베들레헴에서는 짙은 붉은색 천을, 가자에서는 밝은 붉은색을, 헤브론에서는 짙은 붉은색과 갈색 천을 사용했다. 타트리즈 디자인은 라말라의 붉은 꽃이나 야파의 오렌지 나무와 꽃처럼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저항의 상징: 1980년대 제1차 인티파다 동안 토브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땅과의 연결을 시각화하는 저항의 주요 상징이 되었다.
- 케피예 (Keffiyeh): 팔레스타인의 상징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의복으로,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땅에 대한 권리를 지지함을 나타낸다.
- 놋쇠 장신구 (Brass Jewelry): 타트리즈, 케피예 패턴에서 볼 수 있는 하타 물결 디자인, 팔레스타인 저항을 상징하는 수박 같은 패턴을 특징으로 한다.
데이비드 A. 맥도널드(David A. McDonald) 연구원은 "이스라엘의 잠식과 팔레스타인 공간, 시간, 존재의 소멸에 직면하여, 댑케와 같은 토착 관행의 보존은 강력하게 박탈에 저항한다"고 기술하며 "민속은 저항이다"라고 강조했다.
2. 시온주의와 뎁카의 창조
2.1. '새로운 유대인'과 육체의 변혁
19세기 말 시온주의는 유럽 유대인들의 해방 운동으로 부상하며 '새로운 유대인'이라는 이상을 제시했다. 이는 유럽의 반유대주의 담론에서 묘사된 수동적이고 퇴폐적인 '게토 유대인'의 이미지를 극복하고, 남성적이고 강하며 건강한 육체를 가진 존재로의 변혁을 추구했다. 막스 노르다우(Max Nordau)가 주창한 '근육의 유대인(Muskeljudentum)' 개념은 체조와 스포츠를 통해 유대인의 신체를 단련하고 도덕적 재생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상은 1920-30년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개척자(chalutzim)들의 삶에서 구현되었다.
2.2. 문화적 전유와 이스라엘 민속춤의 탄생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 팔레스타인의 시온주의 춤 지도자들은 유럽의 민속춤 전통에서 벗어나 새롭고 독특하며 '진정한' 민족 춤을 창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은 아랍 댑케에서 그 모델을 찾았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아랍 댑케를 단순하고, 뿌리 깊으며, 강인한 동작과 집단적 연대를 표현하는 춤으로 인식하고 매료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랍 댑케는 문화적으로 '번역'되어 이스라엘의 '뎁카'가 되었다.
- 형식의 변화: 마을 축제에서 즉흥적으로 추던 춤이 엄격하게 안무되고 정해진 음악에 맞춰 추는 춤으로 바뀌었다.
- 내용의 변화: 아랍의 사회적 관습이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새로운 이스라엘 유대인, 즉 '사브라(Sabra)'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 양식의 변화: 강한 발구름, 꼿꼿한 자세, 공격적인 어깨 움직임 등 남성적이고 강한 스타일이 새로운 이스라엘 춤의 기본 어휘가 되었다.
2.3. 카르메이 마홀 무용단: 갈릴리에서의 '장소 만들기'
이스라엘 유대인 무용단 카르메이 마홀(Karmei Makhol)은 1982년 갈릴리 지역의 유대인 개발 도시 카르미엘(Karmi'el)에서 창단되었다. 이 도시와 무용단의 설립은 '갈릴리의 유대화'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공식 정착 정책의 일환이었다.
- 장소 만들기(Making Place): 카르메이 마홀의 활동과 매년 열리는 카르미엘 춤 축제는 적대적인 팔레스타인 '공간'을 이스라엘 유대인의 '장소'로 전환하고, 그 지역에서의 지배적 권력 위치를 확립하고 공고히 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기능했다.
- 오리엔탈리즘적 재현: 무용단이 수행하는 뎁카는 팔레스타인 '타자'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반영하고 강화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인을 '고귀하지만 근대화되지 않은 농민'으로 묘사하며, 아랍 여성들을 '억압받는 존재'로 상정했다. 이는 이스라엘 유대인 사회의 '근대성'과 '진보성'을 부각시키고, 유대인-아랍 관계의 권력 위계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 관계의 역학: 카르메이 마홀은 이스라엘 아랍 무용단과 합동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교류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그들의 상호작용은 근본적인 권력 불평등 구조를 반영했으며, 아랍 댄서의 '타자성'을 전제로 한 위계적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3.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와 댑케의 재정의
3.1. 1967년 이후 민족 운동의 재구성과 '투라쓰'
1967년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민족 운동이 재구성되면서, 댑케는 '알-투라쓰 알-샤비 알-필라스티니(al-turàth al-sha'bì al-filas†ìnì)', 즉 '팔레스타인 민중 유산'으로 새롭게 개념화되었다.
- 농민의 상징: 시온주의 정착 정책에 의해 토지를 빼앗기는 상황에서, 땅에 대한 충성심과 끈질긴 저항을 상징하는 '농민(fallah)'의 모습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중심 상징으로 부상했다.
- 수무드(Sumud)의 표현: 댑케는 흩어진 인구가 특정 장소에 뿌리를 둔 공동체라는 감각을 갖게 함으로써, 끈질기게 버티는 저항 정신, 즉 '수무드'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3.2. 남성화된 저항의 춤
새롭게 정의된 댑케는 남성성, 저항, 그리고 전투성을 강조하는 춤으로 변모했다.
- 전사의 이미지: 댑케는 이스라엘에 맞서 무장 저항을 벌이는 자유 투사 '피다이(fidà"ì)'의 신화적 이미지와 결부되었다. 춤은 평화롭게 땅을 가는 농민이 아닌, 전투 준비가 된 '행동하는 농민의 신체'를 상징하게 되었다.
- 샤밥(Shabàb)의 춤: 춤을 이끄는 역할은 전통적으로 마을의 연장자나 유지의 몫이었으나, 이제는 민족주의적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 미혼 남성, 즉 '샤밥'이 중심이 되었다.
- 여성의 역할: 여성, 즉 '사바야(sabàyà)'의 무대 참여는 현대 팔레스타인 국가의 상징으로 장려되었지만, 그 역할은 매우 신중하게 규정되었다. 여성의 춤은 남성들의 활기찬 공연을 보조하는 '측정되고 조용한 움직임'으로 제한되었으며, 남성적인 힘과 폭력성은 배제되었다.
3.3. 엘 푸눈 무용단: 저항, 혁신, 그리고 정체성 협상
1979년 라말라에서 창단된 팔레스타인 무용단 엘 푸눈(El-Funoun)은 댑케를 통한 저항과 혁신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초기 활동: 초기에는 팔레스타인 민속학자들이 정의한 '진정한' 댑케를 무대에 올리며 문화유산의 부활과 보존을 통해 이스라엘 점령에 저항하고자 했다.
- 라크스(Raqs)로의 전환: 1990년대 초 오슬로 협정 이후, 무용단은 점령으로 인한 고립을 돌파하고 국제 춤계와 소통하기 위해 발레와 현대 무용 요소를 통합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댑케를 넘어 '라크스 필라스티니(raqß filas†ìnì)', 즉 '팔레스타인 춤'을 창조하려는 시도였다.
- 사회적 압력과 협상: '라크스'라는 용어는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유혹적이고 부도덕한 여성 솔로 댄서를 연상시키는 부정적인 함의를 지녔다. 따라서 엘 푸눈, 특히 여성 단원들은 이러한 사회적 낙인에 맞서야 했다. 그들은 춤의 의미를 '민족적'이고 '진지한 예술'로 재정의하며, 무대 위에서의 복장, 남녀 간의 신체 접촉, 동작의 수위 등을 두고 끊임없이 사회적 수용 가능성의 경계를 탐색하고 협상했다. 엘 푸눈의 여정은 점령 상황 속에서 전통, 예술적 혁신, 대중의 기대, 젠더 규범 사이에서 정체성을 수행하는 고된 과정을 보여준다.
4. 경계 위의 춤: 이스라엘 아랍 무용단 알 아사옐
4.1. '사이'에 선 정체성
1988년 갈릴리의 아랍 마을 데이르 엘 아사드(Deir el-Asad)에서 창단된 알 아사옐(Al-Asayyel) 무용단은 이스라엘 시민이면서 팔레스타인인으로 정체화하는 이스라엘 아랍인의 복합적인 위치를 구현한다. 이들은 이스라엘 유대인, 서안 지구 및 가자의 팔레스타인인, 그리고 이스라엘 아랍 공동체라는 세 개의 상이한 관객 앞에서 공연하며, 각기 다른 관계의 역학 속에서 춤을 통해 정체성을 협상한다.
4.2. 맥락에 따른 수행: 유연한 '진정성'
알 아사옐의 댑케 공연은 관객의 정체성과 기대에 따라 그 형태와 의미가 유연하게 변화한다. 이는 '진정성'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특정 관계 속에서 협상되고 수행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 이스라엘 유대인 관객 앞에서: 무용단은 이스라엘 문화 관료들의 '진정성'에 대한 기대에 부응한다. 전통 악기를 사용하고, 지정된 전통 의상을 입으며, 남녀 댄서를 분리하는 등 그들의 요구를 수용한다. 이는 이스라엘 내에서 공연 기회, 재정 지원, 해외 공연 파견 등의 실질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 팔레스타인 관객 앞에서: 무용단은 '변절자'라는 비난을 피하고 문화적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보존된 유산'으로서의 댑케를 수행한다. 이들의 공연은 결혼식과 같은 전통적인 사회적 행사(sahrah)의 형태를 띠며,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고 이스라엘 내 아랍인들이 자신들의 '아랍성'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 이스라엘 아랍 관객 앞에서: 무용단은 자신들의 공동체가 직면한 현실을 반영하는 '현대의 유산'을 창조한다. 신시사이저와 같은 전자 악기를 사용하고, 레바논 대중음악에 맞춘 새로운 안무를 선보이며, 무대 위에서 여성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장한다. 이는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소수자로서 겪는 경험과 정치적 자각을 담아내는 동시대적 이스라엘 아랍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알 아사옐의 '공연적 유연성'은 그들의 예술적 비일관성이 아니라, 상충하는 여러 관계 속에서 생존하고 정체성을 주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다.
결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는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댑케/뎁카라는 공유된 문화적 실천을 통해 서로를 형성하고 경합하는 관계적 과정 속에서 구성된다. 이 춤은 양측 모두에게 민족 정체성을 표현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규정하며, 권력 위계를 협상하는 중요한 장이 되어왔다.
카르메이 마홀은 춤을 통해 지배와 장소 만들기를 수행하고, 엘 푸눈은 점령에 저항하며 현대성과 전통 사이에서 정체성을 탐색한다. 그리고 알 아사옐은 경계 위에서 유연한 공연 전략을 통해 복합적인 소수자 정체성을 탐색한다. 이처럼 문화적 공연은 단순히 정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정체성, 권력 관계, 그리고 문화적 의미 자체가 생산되고, 경합하며, 공고화되는 능동적인 현장이다.
팔레스타인 및 이스라엘 민속 무용 연구 가이드
1부: 단답형 퀴즈
다음 질문에 대해 각각 2~3 문장으로 답하시오.
- 7월 25일에 기념하는 '팔레스타인 의상의 날'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 팔레스타인 전통 의상인 *토브(Thobe)*와 자수 기법인 *타트리즈(Tatreez)*는 착용자에 대해 어떤 정보를 전달합니까?
- '관계적 과정(relational process)'으로서의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답케(Dabkeh)*와 *데브카(Debkah)*의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됩니까?
- 답케 춤이 '두 번 발명된 전통'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이며, 각각의 발명은 어떤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이루어졌습니까?
- 팔레스타인 무용단 '엘-푸눈(El-Funoun)'의 예술적 스타일은 창단 이후 어떻게 진화했으며,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무엇입니까?
- 이스라엘 유대인 무용단 '카르메이 마홀(Karmei Makhol)'의 창설은 '갈릴리 유대화' 정책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 이스라엘 아랍 무용단 '알-아사옐(Al-Asayyel)'은 공연하는 관객(이스라엘 유대인,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 아랍인)에 따라 답케 공연을 어떻게 다르게 선보입니까?
- 시오니스트/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담론에서 답케/데브카 춤은 '남성적'인 국가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사용되었습니까?
- 답케 춤의 기본 구성 요소는 무엇이며, 춤을 이끄는 리더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 전통적인 답케 음악은 현대에 와서 어떻게 진화했으며, '일렉트로-답케(electro-dabke)'와 같은 새로운 장르가 등장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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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퀴즈 정답
- '팔레스타인 의상의 날'은 전 세계 팔레스타인인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팔레스타인 문화와 토지에 대한 권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행사는 2014년경 팔레스타인 전통 의상에 대한 이스라엘의 문화적 전유에 대응하여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저항의 상징이자 팔레스타인 유산을 보존하고 축하하는 기회로 발전했습니다.
- 토브는 복잡한 자수인 타트리즈로 장식된 팔레스타인 전통 드레스입니다. 토브의 색상과 타트리즈의 디자인은 착용자의 출신 지역을 나타내는 지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라말라 지역은 붉은 꽃무늬를, 가자 지역은 밝은 붉은색 직물을 사용하는 등 지역별로 고유한 색과 상징(토착 꽃, 국기 등)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 '관계적 과정'으로서의 민족주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이 서로 독립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상호적으로 구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답케와 데브카는 이러한 관계를 보여주는 문화적 실천으로, 두 민족은 이 춤을 통해 서로를 '타자'로 규정하고 그 관계 속에서 각자의 고유한 민족 정체성을 공연하고 확립합니다.
- 답케는 먼저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사이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에 의해 이스라엘 민속 무용인 데브카로 '발명'되었습니다. 이는 유럽 유대인과 구별되는 새로운 '사브라(Sabra)'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1967년 이후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이 재구성되면서, 답케는 이스라엘에 저항하고 독자적인 팔레스타인 민족 유산(투라트, Turàth)을 주장하기 위한 상징으로 두 번째 '발명'되었습니다.
- '엘-푸눈'은 1979년 창단 초기에는 팔레스타인 민속학자들이 정의한 '진정한' 답케를 공연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인티파다를 겪으며 이들은 전통적인 규범을 넘어 몸 전체를 사용하는 *라크스(Raqß, 춤)*라는 새로운 예술 원칙을 도입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국제 무용계의 영향을 받아 발레와 현대 무용 요소를 통합하며, 저항의 상징으로서 팔레스타인 정체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 '카르메이 마홀'의 창설과 발전은 '갈릴리 유대화'라는 이스라엘의 정착 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이 정책은 갈릴리 지역의 아랍인 인구 밀집 지역에 유대인 인구를 늘려 영토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을 가졌습니다. 무용단은 새로 건설된 유대인 개발 도시 카르미엘(Karmi'el)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스라엘 내외에 도시의 존재감을 알리는 문화적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 '알-아사옐'은 공연 맥락에 따라 공연을 조정합니다. 이스라엘 유대인 관객 앞에서는 짧고 정교하게 안무된 공연('ar∂)을 선보이며, '진정성'에 대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통 악기를 사용하고 남녀 무용수를 분리하기도 합니다. 반면, 팔레스타인 관객 앞에서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축제 형태(sahrah)로 공연하며, 이스라엘 아랍인으로서의 문화적 유대를 강조합니다.
- 초기 시오니스트/이스라엘 담론에서 데브카는 유럽의 '여성적인' 게토 유대인과 대조되는 강인하고 '남성적인' 사브라 정체성을 상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1960-70년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담론에서 답케는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강인한 전사(피다이, fidà"ì)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남성들의 춤'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춤은 국가적 해방과 힘을 상징하는 남성적인 공연으로 구성되었습니다.
- 답케는 문자 그대로 '발 구르기'를 의미하며, 여러 무용수가 손을 잡거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줄을 지어 춤을 춥니다. 기본 스텝은 발을 교차하여 옆으로 이동하는 '크로스오버', 발차기, 그리고 바닥을 강하게 구르는 '스톰프'로 구성됩니다. 라위(Lawweeh) 또는 *라스(Raas)*라고 불리는 리더는 줄의 맨 앞에서 춤의 동작과 방향을 결정하며 즉흥적인 기량을 선보입니다.
- 전통적인 답케 음악은 우드(oud), 핸드 드럼, 목관 악기 등으로 라이브 연주되었지만, 현대에는 전자 비트와 결합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진화는 '일렉트로-답케'나 '샴스텝(shamstep)'과 같은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장르들은 전통 악기 요소와 레게, 힙합, 일렉트로니카 같은 현대 음악을 융합하여 답케가 국경을 넘어 비아랍권 청중에게도 다가갈 수 있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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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논술형 문제
다음 질문에 대해 깊이 있게 논술하시오. (답은 제공되지 않음)
- 제시된 자료를 바탕으로 시오니스트/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이 각각 답케/데브카를 활용하여 '남성적'인 국가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하고 전유했는지 비교 분석하시오.
- '엘-푸눈'과 '알-아사옐' 무용단의 사례를 통해 '진정성', '전통', '혁신'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지 논하시오. 특히 각 무용단이 처한 정치적, 사회적 맥락이 그들의 예술적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시오.
- '관계적 민족주의(relational nationalism)'라는 개념을 답케/데브카의 역사를 주요 사례로 사용하여 설명하시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서로에 대한 '타자화'와 상호 연결을 통해 구성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시오.
- 팔레스타인의 전통 의상(토브, 케피예)과 춤(답케)이 문화적 저항, 민족 정체성, 그리고 토지에 대한 권리 주장의 상징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자료에 근거하여 분석하시오.
- '카르메이 마홀'과 '알-아사옐'의 사례 연구를 통해, 갈릴리 지역에서 무용 공연이 민족적 경계를 설정하고 권력 위계를 확립하거나 혹은 도전하는 데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분석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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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주요 용어 해설
| 용어 (원어) | 발음 | 정의 |
| Dabkeh / Debkah | 답케 / 데브카 | 레반트 지역의 전통 민속 춤. 문자 그대로 '발 구르기'를 의미하며, 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춤을 춘다. 팔레스타인 방언으로는 '답케', 히브리어로는 '데브카'로 불리며, 각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적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
| Thobe | 토브 | 팔레스타인 전통 드레스로, 복잡한 자수로 장식되어 있다. |
| Tatreez | 타트리즈 | 팔레스타인 전통 자수 기법. 디자인과 색상은 착용자의 출신 지역, 사회적 지위, 결혼 여부 등의 정보를 나타낸다. |
| Keffiyeh | 케피예 | 저항과 국가 정체성의 깊은 역사를 가진 팔레스타인 전통 두건. 국제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
| Palestinian Costume Day |
팔레스타인 의상의 날 |
매년 7월 25일. 전 세계 팔레스타인인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자신들의 문화와 유산을 기념하는 날. |
| First Intifada | 1차 인티파다 | 1980년대에 발생한 팔레스타인의 대중 봉기. 이 시기 토브는 팔레스타인 저항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
| Relational Nationalism | 관계적 민족주의 | 한 민족의 정체성이 고립되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상호적으로 구성된다는 이론적 접근. |
| El-Funoun | 엘-푸눈 | 1979년 웨스트 뱅크의 라말라/알-비레에서 창단된 팔레스타인 민속 무용단. 전통 답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문화적 저항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 Karmei Makhol | 카르메이 마홀 | 1982년 갈릴리의 유대인 개발 도시 카르미엘에서 창단된 이스라엘 유대인 민속 무용단. '갈릴리 유대화' 정책의 문화적 도구로 기능했다. |
| Al-Asayyel | 알-아사옐 | 1988년 갈릴리의 데이르 알-아사드 마을에서 창단된 이스라엘 아랍 답케 무용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복잡한 정체성을 공연으로 표현한다. |
| Raqß | 라크스 | '춤'을 의미하는 아랍어. 엘-푸눈은 전통적인 답케의 한계를 넘어 발레나 현대 무용과 같은 더 넓은 의미의 예술적 '춤'으로 나아갔다. |
| Turàth | 투라트 | '유산'을 의미하는 아랍어. 1967년 이후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담론에서 답케와 같은 민속 문화는 국가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유산'으로 재정의되었다. |
| ßumùd | 수무드 | '굳건함' 또는 '버티기'를 의미하는 아랍어.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땅을 지키고 일상적인 삶과 문화를 통해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비폭력 저항 개념. |
| Judaizing the Galilee | 갈릴리 유대화 | 갈릴리 지역의 인구 구성을 유대인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이스라엘 정부의 정착 정책. |
| Sabra | 사브라 | 역사적 팔레스타인/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유대인을 지칭하는 용어. 겉은 가시가 있지만 속은 단 선인장 열매에 비유되며, 강인하고 남성적인 '신 유대인'의 이상을 상징한다. |
| Horah | 호라 | 루마니아에서 유래한 원무. 1920-30년대 이스라엘의 키부츠 공동체에서 평등과 연대의 이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춤이 되었다. |
| Lawweeh / Raas | 라위 / 라스 | 답케 대열을 이끄는 리더. '흔드는 사람' 또는 '머리'를 의미하며, 춤의 동작과 방향을 결정하고 즉흥적인 기량을 선보인다. |
| Shimàliyyeh | 시말리예 | 갈릴리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답케 스타일. 이름은 '북쪽(shamàl)' 또는 '왼쪽(shimàl)'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Yishuv | 이슈브 |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전, 역사적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를 지칭하는 용어. |
| Chalutz | 할루츠 | '개척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초기 시오니즘 이민자들, 특히 농업 공동체에서 일했던 이들을 가리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