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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 석탄 재벌(煤老闆, 메이 라오반) 집단의 흥망성쇠와 몰락: 구조적 정책, 경제 위기, 그리고 부패 척결의 삼중 압박

EyesWideShut 2025. 10. 16. 10:59

 

중국 산시성 석탄 재벌의 흥망성쇠_ 중앙 권력과 시장 붕괴가 설계한 '메이 라오반' 몰락의 3가지 이유.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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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 석탄 재벌(煤老闆, 메이 라오반) 집단의 흥망성쇠와 몰락: 구조적 정책, 경제 위기, 그리고 부패 척결의 삼중 압박

I. 요약: 산시 석탄 재벌의 역설

산시(山西) 석탄 재벌, 즉 메이 라오반(煤老闆) 현상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중국의 분권화된 시장 개혁 시기에 탄생한 독특한 경제 현상이었다. 이들은 자원 부문의 급격한 사유화와 지방 정부의 비호 아래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나, 그 부의 기반이 되었던 '지방 보호와 규제 우회' 시스템은 결국 국가적 구조 개편의 대상이 되었다.

본 보고서는 산시 석탄 재벌의 흥망성쇠를 분석하고, 그들의 몰락이 단일한 실패가 아닌 세 가지 구조적 요인의 정확한 충돌에서 비롯되었음을 주장한다. 첫째, 2006년부터 시작된 중앙 정부의 구조적 정책 중앙집중화(석탄 자원 통합). 둘째, 2013년 이후 발생한 시장의 경제적 압력(가격 폭락 및 과잉 생산). 셋째, 2013년 말부터 시작된 중앙의 표적화된 정치적 집행(부패 척결)이다.

분석 결과, 석탄 재벌의 붕괴는 중앙 정부가 분산된 사적 자원 통제를 해체하기 위해 부패 척결보다 훨씬 앞선 시점인 2006년에 이미 규제 공격(자원 통합)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부패 대응이 아닌, 전략적 산업 재편의 산물이었음이 확인된다.1 싱리빈(邢利斌)이나 장신밍(張心明) 같은 주요 인물들의 비극적인 결말은, 지방 정치적 포획에 기반하여 축적된 자원 자본이 시장 성과와 무관하게 내재적으로 높은 정치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II. 자원 신흥 재벌의 탄생: 황금의 10년 (1990년대 – 2005년)

A. 산시의 독특한 정치 경제: 분권화와 자원 포획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산시성에서는 급격한 석탄 수요 증가와 규제 이완이 맞물려 사적 자본이 자원 추출 분야에 대규모로 유입되었다. 이 시기, 석탄 채굴권 또는 국유 광산은 종종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사적 자본에 양도되었는데, 이는 시장 가치에 비해 현저히 낮은, 소위 "배추 가격"(白菜价)으로 인수된 경우가 많았다.3 이러한 저평가 인수는 재벌들의 초기 부의 기반이 되었으며, 그들의 재산에 처음부터 '회색 자본'이라는 정치적 리스크를 부여했다.

B. 급속한 부의 축적 메커니즘과 운영상의 부패

석탄 재벌들은 높은 시장 수요기에 최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안전 및 환경 기준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하고, 높은 생산량을 유지하는 모델을 채택했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 석탄 광산의 합법적인 운영을 위해 필요한 '6대 증명서'(채광 허가증, 생산 허가증, 안전 생산 허가증 등)를 취득하는 절차는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렸으며, 이로 인해 규제 당국의 권력 남용과 금전적 요구가 발생하기 쉬웠다.4

이러한 규제 병목 현상은 뇌물을 사업 운영의 필수 비용으로 제도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재벌들은 규제를 우회하고 지속적인 비준수 생산을 보장받기 위해 지방 관리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거나 지분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처럼 부패는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라, 석탄 재벌들이 복잡한 허가 구조를 헤쳐나가고 안정적으로 비준수 생산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운영상의 필요성이었다.4 지방 관리들과 재벌 간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 즉 관매 구결(官煤勾結, 공식-석탄 유착)이 견고하게 구축된 것이다.

C. 정치적 포획의 기반: 푸셴 석탄국장 하오펑쥔 사례

지방 관리들은 불법적인 운영, 특히 숨겨진 광산 재해 은폐나 생산 중단 명령 시의 지속적인 생산에 대한 '보호 우산' 역할을 수행했다.4

이러한 지방 규제 포획의 대표적인 사례는 산시성 푸셴(蒲县) 석탄국 국장을 지낸 하오펑쥔(郝鵬俊)이었다. 일개 현급 기관의 국장인 그가 베이징과 하이난 등지에 35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불법 자금 3억 500만 위안을 축적했다는 사실은 당시 지방 권력의 전횡과 석탄 재벌의 부패 규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5 하오펑쥔은 자신이 관장하는 석탄 관련 직책을 사적인 광산(성난링煤矿) 운영을 위한 '보호 우산'으로 활용했다. 그는 2004년 석탄국장으로 임명된 후에도 광산 운영을 계속했으며, 2005년 중앙이 공무원의 석탄 광산 투자를 금지하는 철수 명령을 내리자, 위장 퇴출 계약을 맺고 지방 기율위원회에 허위 신고를 했다.5 이처럼 뻔뻔한 공직자의 사적 광산 운영과 규제 우회 시도는 지방 차원에서 중앙 통제가 얼마나 무력화되었는지를 입증하며, 산시성이 이후 대대적인 숙청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취약점을 보여준다.

III. 구조적 해체: 자원 통합 정책 (2006년 – 2010년)

중앙 정부는 석탄 재벌들의 경제적 기반을 해체하기 위해 자원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국가화하는 구조적 정책을 시행했다. 이는 정치적 부패 척결보다 선행된 조치였다.

A. 중앙 정책의 필요성: 산업의 합리화

2006년, 국무원은 산시성에서 석탄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 조치 시범 사업을 추진하는 의견을 승인했다.1 이 정책의 목표는 포괄적이었다. 광산 안전 생산 메커니즘을 개선하고, 석탄 기업 개혁을 심화하며, 자원 시장화를 추진하고, 석탄 채굴 종합 보상 및 생태 환경 복원 보상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1 이러한 조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산되고 비안전하며 수익 누수가 심한 기존 모델을 대체하려는 국가적 의도를 반영했다.

B. 이행: 강제 인수 및 통폐합

산시성 정부는 2006년 2월 '산시성 석탄 자원 통합 및 유상 사용 방법'(제187호 영)을 공포하며 자원 통합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2 통합 작업은 기존 합법 광산을 기반으로 하여 두 개 이상의 광구 또는 폐쇄된 광산의 자원/매장량을 병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광산의 생산, 기술, 안전 역량을 통일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2

구체적인 조치 중 하나는 영세 광산의 축출이었다. 주요 석탄 생산 현에서는 연간 생산 능력이 9만 톤 미만인 광산을 의무적으로 폐쇄하고 그 자원을 통합에 편입시켰다.2 이는 많은 소규모 메이 라오반이 선호했던 파편화되고 저기술적인 운영 방식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조치였다. 더 나아가, 정책은 대규모 기업의 자원 통합 참여와 대형 기업 집단 구성을 명시적으로 장려했다.2이는 수많은 개인의 손에 있던 자원 부를 소수의 국유 기업이나 국가의 지원을 받는 대형 그룹으로 이전시키기 위한 법적·규제적 압력을 조성했다.

이러한 자원 통합은 '안전성 향상'과 '합리적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석탄 재벌의 독립적인 자원 소유권을 박탈하고 산시의 전략적 자원 기반에 대한 국가 통제를 회복하는 사실상의 국유화 조치였다.

C. 석탄 재벌에 미친 영향: 소유자에서 주주로

많은 석탄 재벌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정치적으로 결정된 가격으로 매각하거나, 새로 통합된 국유 주도 법인의 소수 지분을 수용하도록 강요받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핵심적인 결과는 '통합 부패 루프'의 형성이다. 자원 통합 자체가 새로운 부패의 원천이 되었는데, 관리들은 어떤 광산을 폐쇄하고 어떤 자원을 병합하며, 얼마의 가격으로 평가할지를 결정하는 막대한 권한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규제 당국자들이 통합 규정을 악용하거나 우회하여 이익을 취하는 사례(예: 하오펑쥔 5)가 발생했고, 이는 2013년 숙청의 불씨가 된 최종적이고 폭발적인 부패 사건들을 낳았다.

다음 표는 석탄 재벌의 몰락을 초래한 주요 정책 및 시장 이벤트를 시간 순으로 요약한 것이다.

연도 주요 정책/사건 석탄 재벌에 미친 영향 관련
자료
2006 중앙/성 정부 석탄 자원 통합 정책 시작 소규모 광산 폐쇄 의무화, 자원 중앙집중화. 자산 몰수를 위한 법적 근거 확립. 1
2008–2010 자원 통합 드라이브 가속화 독립적인 운영자 축출; 부가 국가/우대 기업으로 이전, 평가 관련 부패 심화. 2
~2013 (상반기) '석탄 황금의 10년' 종언 인식 대규모 과잉 생산 및 수익성 급격 하락. 6
2013년 7월 산시성 '20개 조항'(救市二十条) 정책 시행 실패한 지역 개입; 과잉 공급을 가속화하고 역전된 가격 구조 초래. 6
2013년 말–2014년 중앙 순시팀 파견 / 반부패 숙청 시작 정치적 위험 현실화; '시스템적, 와해성 부패' 폭로 및 보호 우산 해체. 4

IV. 경제적 붕괴: 황금의 10년 종언 (2011년 – 2015년)

구조적 통합으로 인해 이미 취약해진 산업은 시장의 불가역적인 조정에 직면하면서 생존이 불가능해졌다.

A. 과잉 생산과 쇠퇴의 인식

2013년 9월 무렵, 산시성 석탄 산업 관계자들은 이미 "석탄 황금의 10년이 지났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6 시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산시성은 대규모 생산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2013년에는 9억 톤 달성을 목표로 하고 10억 톤을 향해 노력했으며, 이는 2010년(7억 4,106만 톤) 이후 매년 생산 능력이 증가하는 추세를 이어간 결과였다 (2012년 9억 1,332만 톤).6 이러한 공격적인 생산량 증가는 시장의 과잉 공급을 보장했다.

B. 가격 폭락과 지방 정부 개입의 실패

2013년 7월, 산시성 정부는 석탄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구제 시장 20개 조항'(救市二十条)을 발표하며 지역적 개입을 시도했다.6 그러나 이러한 지방 정부의 지원 정책은 석탄 기업들로 하여금 생산량을 늘리도록 유도했고, 이는 "더 구제할수록 더 과잉 공급되는" 기현상을 낳았다.6

문제는 가격 구조에서 발생했다. 5대 석탄 그룹이 협상을 통해 성내 동력탄 가격을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하려 했으나, 이는 성내 동력탄 가격은 높고 항구 동력탄 가격은 낮은 '가격 역전'(倒挂) 현상을 초래했다.6 이로 인해 산시성 내에서는 수익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던 동력탄도 항구로 운송되어 판매될 경우 저가 때문에 직접적인 손실을 입게 되었다.6 이 분석은 산시성 내부의 정치적 포획으로 번성했던 석탄 재벌의 번영이 궁극적으로 중앙 및 국제 시장의 힘에 종속되며, 지방 정부의 조치로는 거대한 시장 현실을 통제할 수 없었음을 입증한다.6

경제적 붕괴와 가격 역전은 이윤 마진을 직접적으로 잠식했으며, 이미 통합 과정에서 레버리지를 이용하거나 부채가 많았던 재벌들이 재정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이전에 정치적 비호 아래 숨겨져 있던 자산들을 국가 압류나 법적 조치에 노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V. 정치적 숙청: 시스템적이고 와해적인 부패

경제적, 구조적 위기는 중앙 정부가 대대적인 정치적 숙청을 실행할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제공했다.

A. 2013/2014년 전환점과 시스템 붕괴

2013년 말, 중앙 순시팀이 산시성에 파견되면서 '시스템적, 와해성 부패'(系统性、塌方式腐败)의 실체가 즉시 드러났다.7 이 단속은 전례 없는 규모로, 성부급 간부 7명이 낙마했으며, 성도인 타이위안(太原)에서는 세 명의 연이은 시위서기와 세 명의 공안국장이 조사를 받았다.7 2014년 한 해 동안 산시성 각급 기율 검사 감찰 기관은 15,450명의 당원 간부를 처분했는데, 이는 부패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시스템 자체의 고질적인 문제였음을 확인시켜주었다.7

B. 행정적 해체와 공식-석탄 연결망

반부패 캠페인은 석탄 재벌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후원 네트워크, 즉 '보호 우산'을 해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조사 결과, 고위급 관리들이 사적 광산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다퉁(大同)시 부시장을 지낸 왕옌펑(王雁峰)은 광산주 리커웨이(李克偉)로부터 1천만 위안의 뇌물을 수수했다.4

특히 '석탄 재벌 한 명이 세 명의 청급 관료를 끌어내리다'는 사례는 유착의 깊이를 보여준다. 광산주 리커웨이의 광산에서 은폐된 광산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시작된 조사는 결국 리커웨이를 비호했던 다퉁시 부시장 왕옌펑, 다퉁시 공안국장 선위안(申公元), 산시성 안전생산감독관리국장 궁안쿠(鞏安库) 등 고위급 안전 및 행정 관리들의 부패 혐의를 밝혀냈다.4 이는 안전 규정 위반과 정치적 보호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숙청 작전은 정치적 무기화의 전형적인 예시로 평가된다. 이는 보호막 역할을 했던 관리()와 자금을 제공했던 사업가()를 동시에 표적으로 삼아 관매 구결 시스템의 필수 메커니즘을 파괴했다.4 부패 척결은 단순한 처벌을 넘어, 중앙 정부가 성의 전략적 자원에 대한 거버넌스 통제권을 완전히 되찾고, 향후 수익과 지대가 지방의 관료-재벌 동맹이 아닌 중앙 권력으로 흐르도록 보장하는 수단이었다.

VI. 주요 인물들의 비극적인 운명

고위급 석탄 재벌들의 궤적은 그들의 몰락이 구조적 환경 변화와 맞물려 어떻게 가속화되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인물 주요 신원/연관성 몰락/노출 메커니즘 결과/상태
싱리빈
(邢利斌)
린펀/뤼량 석탄 재벌 사치성 공개 행사 (7,000만 위안 결혼식); '회색 자본'에 대한 정치적 감시 촉발. 법적 조사 대상 및 수감 (비극적 종말).
장신밍
(張新明)
'산시 도박왕' 초국가적 부패; 중앙 국유 기업 (화룬) 자산 강탈 및 역외 자금 세탁 연루. 국가급 부패 스캔들의 핵심 인물 (비극적 종말).
하오펑쥔
(郝鵬俊)
푸셴 석탄국장 (官煤) 규제 포획의 전형; 공직을 이용해 3억 500만 위안 축적 및 불법 광산 소유. 유죄 판결; 징역 20년 선고 및 대규모 벌금.
지아위에팅
(贾跃亭)
윈청 기업가 (LeTV 설립자) 초기 자본이 석탄 인접 사업(세척탄, 운송)에 기반. 성공적인 자본 전환; 이후 사업 변동성 있으나 정치적 생존.

A. 싱리빈 (邢利斌): 부의 상징과 정치적 자살

싱리빈은 산시성 뤼량(吕梁)시 진청허 그룹(金业集团)의 회장으로, 2012년 7,000만 위안(약 130억 원)을 들여 딸의 호화 결혼식을 개최하며 전국적인 관심과 적대적인 여론을 불러일으켰다.3 그는 이 행사를 그룹 창립 10주년 기념식 및 하이난 부동산 프로젝트 개장과 결합하려 했으며, 결혼식 비용은 사위 측이 부담했다고 주장했지만 10, 대중의 분노는 막을 수 없었다.

이 막대한 대중적 반발은 지방 정부의 압력으로 이어졌다. 뤼량시 비공유제 경제 조직 공작위원회와 공상업 연합회는 기업가들에게 '올바른 이익관과 부의 가치관'을 세우고, "재산을 과시하거나, 낭비하지 말 것"(不炫富、不摆阔、不挥霍)을 요구하는 공식 지침을 발표했다.3

이러한 정치적 압박의 근본 원인은 싱리빈의 재산이 '회색' 성격을 띠고 있다는 뿌리 깊은 의혹에 있었다. 많은 석탄 광산의 사유화 과정에서 자산 평가가 불투명했고, 공권력이 암묵적인 지분을 보유했거나 불법 행위가 동반되었던 것이다.3 싱리빈의 고가 과시는 그가 가진 재산의 취약성—불투명한 자원 획득과 환경 방치—을 전국적으로 폭로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의 높은 가시성은 정치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명확한 대중적 구실을 제공했으며, 이는 결국 그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B. 장신밍 (張明): 역외 연결망과 초국가적 부패

'산시 도박왕'으로 알려진 장신밍은 석탄 재벌 부가 불법적인 금융 활동 및 주요 국제 도박 조직과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이다.

장신밍의 몰락은 중앙 국유 기업(SOE) 부패 스캔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2014년 4월, 신화사 기자인 왕원즈(王文志)는 장신밍의 자산이 화룬그룹(華潤集團) 회장 쑹린(宋林)의 부패 및 자금 세탁 스캔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실명으로 고발했다.11

고발에 따르면, 쑹린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장신밍과 연관된 인물(예: UBS 홍콩 지사에 근무했던 양리쥐안)을 통해 불법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고 뇌물을 수수하는 통로로 활용했다.11 장신밍은 수십억 위안에 달하는 불법 자산을 국내외 은행에 예치하거나, 쑤저우, 상하이, 홍콩 등지의 고급 부동산에 소유하고 있었다.11 그의 사례는 가장 큰 석탄 재벌들이 단순한 지방 권력 중개인이 아니라, 중앙 정부의 감시를 받는 국유 기업을 매개로 하는 국가적, 초국가적 부패 네트워크의 핵심 구성원이었음을 드러낸다. 그의 몰락은 중앙 국유 기업의 부패 척결 드라이브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VII. 자본 도피와 생존자들

대부분의 메이 라오반은 수감이나 자산 몰수라는 비극을 맞았지만, 일부는 정치적 압박이 덜한 부문으로 자본을 성공적으로 전환하거나 해외로 이전하여 생존했다.

A. 생존 전략: 다각화와 은둔

가장 기민했던 석탄 재벌들은 2013년 붕괴가 닥치기 몇 년 전부터, 특히 2006년 통합 정책 이후 변화하는 규제 환경을 인지하고 석탄 자산을 매각하거나 전략적으로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싱리빈의 호화 결혼식에서 보았듯이 3, 자원 기반 부의 과시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교훈을 얻고 극도로 낮은 공적 가시성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B. 역외 이주를 통한 자본 세탁

장신밍의 사례는 복잡한 자금 세탁 및 이전을 위해 UBS와 같은 국제 금융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음을 시사한다.11 정치적 위험에 직면한 자본은 홍콩, 호주, 캐나다 등지로 도피하여 외국 거주권을 확보하고 자산을 중국 국내 정치적 위험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렸다.

이러한 자본은 이중 전략을 채택했다. 직접적인 정치적 위험에 노출된 자본은 역외 은폐와 도피(장신밍 모델)를 추구했고 11, 상대적으로 깨끗하거나 일찍 축적된 자본은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환영받는 첨단 기술 분야로의 신속한 다각화(지아위에팅 모델)를 선택했다. 자원 자본은 국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석탄'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던져야 했다.

C. 석탄 자본의 유산: 새로운 벤처로의 변신

석탄 산업에서 추출된 자본은 새로운, 정치적으로 용인되는 고성장 벤처의 초기 시드머니 역할을 했다. 러에코(乐视, LeTV)의 설립자인 지아위에팅(贾跃亭)은 논란이 많은 테크 사업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사업 여정은 윈청(运城)에서 시작되었으며, 초기 기업인 줘위에 실업(卓越实业)은 석탄 정제(세척탄, 洗煤精), 인쇄, 운송 등 고수익의 석탄 인접 사업에 집중했었다.8 비록 지아위에팅의 후기 사업이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례는 산시 자원 경제에서 추출된 초기 자본이 어떻게 TMT(기술, 미디어, 통신)와 같은 현대적인 부문으로 성공적으로 전환되어 정치적 숙청을 피해갔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경로이다.9

결국, 메이 라오반은 독특한 정치적 계급으로서는 붕괴했지만, 황금의 10년 동안 추출된 근본적인 자본은 새로운, 깨끗한 기업 이름 아래 중국 및 글로벌 경제의 다양한 부문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VIII. 결론: 정치적 위험 관리와 산시 모델

산시 석탄 재벌의 몰락은 분권화된 시장 개혁기에서 중앙집권적 통치 시대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결과였다. 그들의 몰락을 이끈 세 가지 벡터—구조적 통합, 경제적 붕괴, 정치적 숙청—는 서로 맞물려 작용했으나, 핵심은 국가 권력의 중앙집중화였다.

자원 통합 정책(2006년)은 지방 엘리트들의 자산 통제권을 박탈하고 산업을 합리화하려는 장기적인 구조 개편의 시작이었다. 이 정책은 재벌들의 경제적 기반을 체계적으로 약화시켰다. 이어서 발생한 시장의 가격 폭락(2013년)은 이들의 사업을 재정적으로 압박함으로써, 부패한 관료들에게 필요한 재정적 지원 능력을 고갈시켰고, 결과적으로 관매 구결이라는 정치적 보호 시스템을 와해시켰다.

최종적으로, 2013년 말 중앙 순시팀의 도착과 반부패 캠페인은 이미 구조적, 경제적으로 취약해진 시스템을 표적으로 삼아 '와해성 부패'를 적발함으로써, 중앙 정부가 산시의 자원에 대한 완전한 거버넌스 통제권을 회복하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했다.7

산시의 경험이 주는 지속적인 교훈은 명확하다. 자원 집약적 부문에서 기업의 생존과 부의 축적은 시장 위험(가격 변동)이나 규제 위험(통합)보다 궁극적인 정치적 위험(반부패)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석탄 재벌들은 지방 관료들을 포획함으로써 규제를 우회하는 데 성공했지만, 중앙 정부의 전략적 통제 회복과 정치적 숙청은 그들의 모든 부를 무효화시켰다. 산시성은 현재 국유 기업이 주도하고 안전성이 강화되며 중앙집권적인 자원 관리 모델로 전환되었으며, 이는 중국 내 전략적 자원 부문의 미래 표준을 제시한다. 이 모델 하에서, 지방 권력과 결탁하여 축적된 '회색 자본'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으며, 과시적인 행위는 정치적 자살로 간주된다.